청도맥주

 

여행 첫날 술 사냥을 나섰다.

소문난 청도맥주로 가라앉지 않는

연변의 하이에나 밤거리.

그 밤을 고려촌이라는 술로 채우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연변대 미술철학 교수가

가짜를 마셨다고 한바탕 후닥거렸다.

다음날 그 철학교수는 청도맥주로

한중문화예술소통을 위한 건배를 외쳤다.

잔마다 흘러넘치는 거품

그들도, 나도

괴짜 철학이 난무한 문학과 미술도

가짜의 거품을 뒤집어쓰고 있다.

밤의 거품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정남석 시집 <검정고무신>에서

 

정남석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검정고무신>.

 

가짜라는 말은 진짜라는 말의 반대어이다. 진짜라는 말이 眞짜라고 한다면 가짜는 假짜일 것이다. 그렇다면 假짜라는 것은 ‘임시로 변통해서 빌려 쓰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본래 가짜라는 것은 진짜 대신 임시로 가져다 쓰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그것은 진짜는 아니지만 진짜 대신 사용해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정도의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물질과 자본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면서 이 임시로 변통해 쓴다는 말도 대단히 위험한 수준으로까지 변질이 되었다. 진짜에는 진짜의 값이 있고, 가짜에는 가짜의 값이 있는 것인데, 가짜를 진짜의 값으로 판매하게 되어 속임수나 사기라는 문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고려촌이나 청도맥주는 가짜가 많다고 한다. 가짜가 많기 때문에 보지 않아도 당연히 가짜를 마셨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게 된다. 이해는 가는 일이다. 그런데 고려촌을 마신 시인은 분명 진짜 고려촌으로 알고 마셨을 것이다. 본래 고려촌의 맛을 알 수가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릴 수가 없다. 하지만 고려촌으로 알고 즐겁게 마셨다. 그런데 동석했던 사람도 아닌 누군가가 단정적으로 가짜를 마셨다고 비아냥댄다면 사실은 그의 인간적 품위 자체가 가짜일 수 있다는 항변이 나올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이 가짜일 수 있는 것이다.

진짜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말한다면, 혹은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진짜라고 말한다면, 어떤 말이 잘못된 말일까. 가짜도 쓰임에 맞는 순간 진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진짜도 쓰임에 맞지 않으면 그 순간 바로 가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임시로 빌려 사는 세상, 임시로 빌려 쓰는 육체, 우리는 진짜보다 가짜를 더 많이 쓰고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짜보다 가짜를 쓰고 있다. 그래서 가짜가 판을 치는 것이다. 가짜를 혐오하지 말자./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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