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일

보이지 않는 일

 

저녁 모임 후 오랜만에 만난 지인 M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만수6동 거리를 걸었다. 이제 막 더위가 시작되어 모임장소는 꽤 더웠는데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 상쾌했다. 거리는 적당히 한적하고 아늑했다. M은 내게 친구를 소개하겠다며 국민은행 사거리에 있는 오래된 수제 구두점으로 갔다. 이 구두점에는 특별한 디자인의 구두가 많아 예전엔 나도 가끔 구두를 사러가곤 하던 곳이었다. 엄지발가락을 다쳐 구두를 신을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친구와 함께 흥겹게 얘기를 나누고 있던 주인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말끔한 커리어우먼 차림에 친근한 분위기를 가진 그 친구는 밝게 웃으며 “나는 놀러 다니는 게 일인 사람이에요” 한다. 내가 궁금한 표정을 짓자 그녀는 이삿짐센터의 영업담당이라고 실토했다. 매일 공인중개소를 찾아다니며 중개사들과 친분을 쌓고 이삿짐센터 홍보 명함을 비치해놓는 것이 일이란다. “나는 이 일이 아주 재미있어요. 무엇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친해지기만 하면 중개사들이 알아서 고객을 소개해주니까요. 요즘은 여성 공인중개사들이 많기 때문에 여성이 영업하는 게 더 좋기도 하구요. 그래서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이 구둣가게도 그렇게 해서 사귄 친구구요.”

나는 이삿짐센터에도 영업직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사할 때마다 이삿짐센터에 직접 전화했던 내 경험에 비추어 다른 사람도 모두 나처럼 하는 줄 알았다. 이삿짐센터 하나를 운영하는 일에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가능하다(그리고 보이지 않는 일은 대개 여성이 한다). 이삿짐센터 하면 힘쓰는 남성의 일로 짐 옮기는 일만 생각했으니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틈새시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사는 한 여성을 만난 오늘 밤,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아차! 나는 그녀의 명함을 받지 못했다. 나는 홍보 대상이 아니어서 그랬을까?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