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을 넣기 위해 장수동의 한 주유소에 들어섰다. 이 주유소는 다른 곳에 비해 기름 값이 조금 싸서 항상 차들이 북적였던 곳인데 다행히도 한적하여 바로 주유를 할 수 있었다.

고온다습한 찜통더위가 계속되어 에어컨을 틀어도 차 안의 더위를 식히기에 역부족인데 기름을 넣기 위해 시동을 끄니 차 속은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막 주유를 시작하려는데 내 차 앞으로 낡은 오토바이 한 대가 들어왔다.

초로의 주유원은 그 오토바이를 보더니 “오천원 어치니까 금방 끝나요. 오토바이 먼저 넣을게요” 하면서 내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주유를 중단하고 오토바이 쪽으로 가버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차속의 온도가 더 치솟는 듯 했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내게 물었다.

“얼마나 넣을까요?” 그 순간 나는 폭발했다. 조금 전 나는 똑같은 질문을 받고 분명히 주문을 했는데 그는 그것을 잊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 건망증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다.

내 의사는 묻지도 않은 채 오토바이에게 먼저 주유하느라 나의 주문 내용을 잊고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다시 묻는 그 부주의함, 무례함에 화가 났던 것이었다. 그때서야 주유원은 아무 변명도 않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주유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속에서 나는 내가 화낸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잊었다.

며칠 후 내가 화낸 것이 정말로 정당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느닷없이 내 뒷통수를 쳤다. 나는 왜 그렇게 과도하게 화를 냈을까? 나는 옳았을까? 그 주유원은 왜 그렇게 했을까? 그 상황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은 무엇일까? 오토바이를 보자마자 오천원 어치 주유할 것을 알 정도면 그 오토바이 주인은 단골이거나 주유원과 친분이 있는 사람일 게다.

내가 주유하는 동안 오토바이 주인이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내가 기다려야 하는 시간보다 더 길다.

나는 차 안에 있지만 오토바이 주인은 뙤약볕 아래 그대로 서 있어 더 더울 것이다. 그 주유원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오만 원 주유하는 사람보다 오천 원 주유하는 사람을 우선한 그 주유원의 셈법은 온 순서대로 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셈법으로 무장한 나와 달랐다.

나는 그가 내 셈법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화를 냈던 것이다.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정말 어렵다. 아저씨, 미안합니다. 또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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