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영 나누리인천병원 관절센터 소장

김민영 나누리인천병원 관절센터 소장

“선생님을 믿을께요” 환자의 이 한마디, 의사로서 부담되는 말이다.  하지만 또한 치료에 큰 힘과 격려가 되기도 한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믿을께요” 
병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뒤에서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오랫동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치료 후에도 항상 고마워하고 믿어주는 환자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일흔이 훨씬 넘은 환자분이었다. 양쪽 고관절 모두 인공관절수술을 받았던 분이었다. 고령이고 몸이 안 좋은 상태였지만 다행히 결과가 좋아 환자 분과 보호자 모두 고마워했다. 그렇게 잘 지내시길 바라며 잊혀져 갈 때쯤, 환자 분과 보호자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진료실을 찾았다.
반갑긴 했으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오랜만에 재방문한 환자들을 보면 가끔 예전에 수술한 부위가 안 좋아져 오는 경우도 있어 약간 걱정이 됐다.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수술한 곳은 괜찮구요” “선생님”하며 보호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오늘 온 이유는 선생님이 수술한 부위에 문제가 생겨 온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당뇨가 있으신데 종아리에 상처가 곪아 낫지 않아서 왔습니다.”

그 말과 함께 보호자의 표정이 좋지 않아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어디 한번 볼까요”하며 종아리에 붙여 있던 거즈를 벗겨내며 상처를 본 순간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로 보였다.

상처는 이전에 종아리 부위에 성형수술한 물질이 피부 밑에 넓고 딱딱하게 이물질로 남아있고 그 부위로 곪아 고름이 나오며 종아리 뼈까지 보이는 모습이었다.

“사실은 유명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했으나 치료 결과가 좋지 못할 것이라고 심각하게 이야기하셔서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당뇨병으로 다리 절단 가능성이 있었던 환자.
당뇨병이 있는 다리는 혈액순환과 면역력이 좋지 못해 급속하게 괴사와 염증이 파급돼 절단해야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치료결과가 좋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던 터라 치료결과에 자신을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의사인 나를 믿고 찾아온 환자에게 실망시킬 수는 없어 ‘나를 믿고 치료를 받으신다면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치료가 시작됐다. 염증 부위를 제거하고 소독약으로 씻어내고 또 씻어내고. 3개월간의 입원기간 동안 정성을 다해 상태에 따라 매일 또는 2~3일에 한번씩 치료를 했다.

그러나 워낙 피부상태가 좋지 않고 당뇨병에, 성형 이물질까지 있는 터라 염증이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태로 두면 다리를 절단해야 될 정도로 염증은 더 심해졌다.

최선의 치료노력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지 않았던 결과, 그러나 그 환자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보호자와 상담을 하며 지금까지 정성을 다해 치료를 했으나 안타깝게도 치료 경과가 좋지 못해 종아리 피부 밑에 퍼져 있는 성형 이물질을 다 제거해야 염증이 없어질 것 같다는 설명을 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다리를 절단할 가능성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보호자는 그 동안의 치료를 고마워 하면서도 긍정적인 결과가 아닌 것에 대해 낙담을 하며 어머님과 상의해 보겠다고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회진을 돌게 되었다. 환자분의 병실 앞에서 잠시 안타까운 마음을 추스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오랜 기간의 치료에도 결과가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환자분의 표정도 어두워 보였다.

다시 한번 무거운 마음으로 환자분에게 직접 상황을 설명 드리고  병실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 뒤에서 크게 들려오는 떨리는 목소리가 나의 마음을 울렸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믿을께요!”

너무 큰 책임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그 말에 힘을 내 다시 최선을 다해 치료했다. 다행히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10여 개월이 지난 후 몇 차례의 피부 이식과 수술로 다리를 절단하지 않은 상태에서 염증이 잡히고 피부가 살아났다. 얼마전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실을 찾아와 즐거운 표정으로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갔다.

끝까지 의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환자, 감사의 마음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 느껴  많은 환자를 치료하다 보면 가끔은 치료에 만족 못하는 분들도 있고 결과가 좋지 못해 재수술이 필요한 환자들도 있다.

의사로서 그런 상황이 참 힘들고 괴로운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치료받은 모든 환자분들이 치료에 만족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은 의사로서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나 안 좋아진 상황에서도 믿음감을 갖고 따라 주시는 분들에게는 감사의 마음과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선생님을 믿을께요”라는 이 한마디가 때로는 의사로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선을 다해 치료해야겠다는 큰 힘이 되는 말도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믿음 뒤에 좋은 결과가 나타날 때 얻는 보람은 의사로서 가장 행복해지는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