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길에 창대시장에 들렀다. 어두컴컴한 통로, 희미한 불빛 아래서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M이 먼저 그들을 알아보고 반갑게 불렀다. 그들은 같은 모임의 임원들로서 모임을 마치고 뒷풀이를 하러 온 참이었다. 낯선 나의 등장으로 인한 어색함이 사라지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선술집 주인의 남편은 젊은 시절 개그맨의 매니저 일을 하면서 개그맨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아 지금은 방송・이벤트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재래시장에서 경로잔치 진행을 하던 그를 본 기억이 났다. 그때에는 우스꽝스러운 복장에 진한 농담도 잘하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더니 지금은 별로 말도 않고 조용히 앉아 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는 이 선술집 주인의 남동생으로 중국집을 운영한다고 했다. 젊은 시절 권투선수가 되려고 낮에는 중국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권투도장에서 연습했단다. 그러던 중 동네에서 싸움이 일어나 후배 세 명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 일로 그는 권투를 접고 고향에 내려와서 중국집을 차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한다. 작은 체구에 강직하고 다부져 보이는 것이 그가 왕년에 권투선수였음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중화요리협회가 만들어졌어요. 음식부자재를 공동구매 하려는 목적으로요. 처음에는 적은 인원이 시작했는데 공동구매해서 바로 이익이 나는 것을 보더니 회원이 막 늘어요. 회원하자고 말하기도 좋아요. 자기에게 좋다는 것 아니까 소개하면 바로 가입해요. 피부에 와 닿으니까요. 정치는 이렇게 피부에 와 닿아야 하는 거에요. 뜬구름 잡는 얘기 말고 피부에 와 닿는 정치, 그거 했으면 좋겠어요.”

그때 여주인이 양푼에 열무김치 비빔밥을 쓱쓱 비벼가지고 서비스 안주로 내어 놓으며 끼어들었다.

“동생은 누나인 내게도 음식은 정성껏 만들어야 한다고, 대충 하려면 하지 말라고 지금도 가르쳐요. 이 동생 덕분에 나도 일찍부터 음식장사를 하게 되었어요.” 그 바람에 그의 얘기는 끊어지고 그 남편은 지나가는 소리로 “나 때문에 마누라가 고생 많이 했지” 하고 슬그머니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삶의 무게를 지느라 꿈을 내려놓은 중년의 남자들이 젊은 날의 꿈을 담담히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왠지 숙연해졌다. 피부에 와 닿는 정치를 하라는 그의 눈빛은 꿈을 대신 이루어줄 사람을 찾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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