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정취가 물씬 흐르는 금요일 오후, 지인 P를 만나러 구월2동 체육공원에 갔다. 시원한 나무그늘이 드리운 공원 입구에는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상도, 받침대도 없고 안주도 변변찮았다.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다른 소일거리가 없을까. 저렇게 낮부터 술을 마시면 건강에 나쁘지 않을까.공원 입구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용할 때 거북하지 않을까. 할머니들은 어울릴 수 있을까' 등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공원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 나무도 많고 시야도 확 트여 기분이 상쾌해졌다. 예전에 흙먼지가 풀풀 나던 축구장은 인조잔디로 말끔히 포장되고 팬스까지 둘러져 관리되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가끔 이용하고자 해도 신청자가 너무 많고 자기들 수준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빌리기가 어렵다고 불평하던 곳이다.

축구장은 비어 있었지만 축구장 둘레에 만들어진 조깅코스에는 간간히 걷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대개 나이 드신 분들이다. 반바지에 반팔 운동복 차림으로 제대로 조깅을 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셨고 친구인 듯 서로 손을 잡고 걷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다리가 불편한 중년 남자도 열심히 걷고 있었고, 시력이 나쁜 듯한 분도 조심조심 걷고 있었다. P는 이른 아침에는 노인들이, 저녁에는 젊은 사람들이 운동하러 많이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공원 주변은 빌라촌이다. 언덕 위 쪽은 양계부락, 아래 쪽은 용천부락이라고 불리는 옛 자연부락이 그대로 빌라촌이 된 곳이다.

P에 의하면 이 지역은 이미 재개발 승인이 났으나 지금에 와서는 재개발 취소를 원하는 주민들이 많아져서 반대서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재개발이 되면 무조건 돈을 버는 줄 알았으나 이제는 재개발 아파트를 지으면 주민들 대부분은 그 아파트에 들어갈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그나마 있는 자기 집마저 잃어버리고 갈 곳이 없게 된다는 재개발의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갑자기 재개발되면 이 공원은 어떻게 될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이 공원자리는 원래 만월산 자락의 작은 구릉이었다. 그 구릉 한쪽 자락에 1990년대 초 아파트를 지으면서 구월동으로 넘어가는 대로를 내는 바람에 구릉은 두 동강이 났다. 다행히 구릉 위쪽으로 주택들과 큰 공원이 만들어져 아담한 마을이 되었다.

내가 공원에 들어섰을 때 기분이 좋아진 것은 단지 날씨 때문만이 아니라 이 공원이 만월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이 낮은 지붕들과 공원을 지나 구월동까지 신나게 불어가는 통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공원은 구월동의 허파인 것이다.

그런데 만월산 쪽을 바라보니 시야를 가로막고 재개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스카이라인도 엉망이 되고 만월산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P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낡았지만 비둘기집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빌라를 헐지 않고 수리만 잘 해서 P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공원에서 보았던 술 드시던 노인들, 운동하던 분들, 몸이 불편해 보였던 분들도 다 이 곳에서 단잠을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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