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잡가  
홍성란

시방 노래허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필연이 어떻더냐 둥그더냐 모지더냐 사랑을 속이고 미움을 속여분 아가, 길은 걸어간 뒤에 생긴다 안 하더냐 걸어온 길 보이면 인자는 헤어지거라 인자는 변절하거라 둘러댄 말이라메, 그 인사 어사화가 어울리기나 하겄냐, 회자정리라 안 하더냐 이쯤에서 정리해 불고

기회는 왔을 때 퍼뜩 잡아야제 이 년아,

-홍성란 시집 <춤>에서

 

홍성란

부여 출생. 1989년 중앙시조백일장으로 등단. 시집 <황진이 별곡>, <따뜻한 슬픔>, <춤> 외 다수.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분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 수상.

 

춘향이 몽룡을 배신할 만한 기회는 언제였을까. 변 사또가 넌지시 유혹했을 때가 아니었을까. 여기쯤에서 춘향전을 새롭게 쓸 수도 있겠다. 훌쩍 떠나버린 이몽룡이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 것은 역시 소설이기 때문에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어차피 퇴기의 딸인 신분이고, 신관 사또가 니캉내캉 하자는 데 마다하는 춘향이 오히려 무모한 것이 요즘의 상식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매 맞아가며 옥살이까지 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웬 정절이었나 싶기도 하다.

변사또의 수청을 허락한 춘향이는 물론 마르고 닳도록 잘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다고 하자. 이몽룡이는 이제 떠난 사람이므로 잊는 것이 당연한 거라고 여겼다고 하자. 춘향이 그 바른 심성으로 변 사또 치적 바르게 하도록 내조 열심히 했다고 하자. 그러면 이몽룡이 어사 되어 내려와 보았자 치도곤할 사또는 없고, 잘 살고 있는 춘향이 소문 듣고 배 많이 아팠을지 모른다. 오히려 이몽룡이 없는 변사또 허물 만들어 내어 춘향이 다시 데려갈 수작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춘향전의 주인공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겠다. 이몽룡이 악역의 조연으로 전락한다는 새로운 줄거리다.

시는 상상력이 핵심이다. 모든 세상과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돋보여야 한다. 사설시조는 말의 성찬이다. 거기에 해학과 풍자, 재치와 반어가 돋보이는 장르이다. 시조의 현대화에 기여하고 있는 시인의 시적 능력이 탁월해 보인다. /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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