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과 고요 사이

어둠과 고요 사이 어둠이 소낙비처럼 쏟아진다.

놀란 가로등이 화들짝 깨어난다.

가로등 앞장세워 불을 밝힌 수첩들이 묘연한 어제의 행방을 찾는다.

어둠은 밤새 아리송한 길을 만들고 드러누운 도시를 일으켜 세운다.

어둠과 고요의 사이에서 춤추는 오늘이 달아나는 겨울 모퉁이를 순식간에 삼킨다.

어둠을 삼키고 고요마저 삼킨다. 길섶 야윈 풀잎과 벌거벗은 나무들이 흔들린다.

마른 바람들이 뒤틀린 빈터를 채운다. 표류하던 기억들이 사르르 줄을 선다. -계간 리토피아 봄호에서

 

이중산 2014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막비시동인으로 활동 중.

감상

우리는 밝은 빛 속에서 움직임을 본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기준이 우리의 눈일 때 그렇다. 그러나 사물의 진정한 움직임은 어둠 속에서 이루어진다. 빛에서의 움직임은 시늉에 지나지 않지만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은 본능 그 자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어둠 속에서의 왕성한 움직임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이 필요하다.

눈을 감으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감고도 사물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다면 경지에 오른 사람임이 분명하다. 눈을 감은 채로 사물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면 그때는 눈을 뜨고 바라보는 사물의 움직임보다 더 분명한 움직임을 포착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어둠 속에서 저 사물들의 분주한 움직임을 읽어내는 능력은 탁월한 시적 능력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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