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새

잡히지 않는 새 한 마리 잡으려고

책걸상을 새로 들여놓았다

자리를 치우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허虛, 忘망을 잡았다

요동치는 마음을 지켜보는

또 다른 마음

들고 있던 의자를 놓아버렸다

허망을 놓아버렸다

-이명수 시집 <바람코지에 두고 간다>에서

이명수

197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공한지>, <울고 싶은 곳을 안다>, <바람코지에 두고 간다> 외. 계간 <시로 여는 세상> 대표.

꿈이란 게 본래 그렇다. 절대로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꿈이다. 되지 않을 것을 꾸며 만든 것이라 그렇다. 그런데 이 꿈이라는 것은 살려고 하는 본능만치나 깊이가 있고, 가치도 있고, 또 오래 되었으며, 사라질 수가 없는 것이다.

꿈이 없으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다. 꿈을 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져 버린다. 꿈을 꾸지 않으면 단박에 무능력자로 전락해버린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 것이고, 그래서 꿈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가 힘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꿈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모두 가만히 앉아있지 않고 날아다니는 새이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므로 여간해서는 잡기가 어렵다. 그래서 보다 손쉽고 완벽하게 잡기 위해서 시인은 책걸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보다. 책걸상이 있어야 시작이라도 해 볼 수가 있다는 생각이었으니 아마도 그 새는 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준비라는 것은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새는 아직도 언제나처럼 허공에 날아다닌다. 게다가 그 새를 잡은들 무엇 하랴, 하는 생각에 이르면 모든 것은 허망에 빠지고 만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다가 아니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이루어진다 해도 절대로 소망했던 만큼의 기쁨을 얻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손에 들었던 의자를 놓아버리는 노시인은 그 의자가 허망이었다고 적고 있다. 사라진 시간 때문일까. 소모된 에너지 때문일까. 마음을 비웠음인가. 깨달음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읽고, 자신을 분명하게 읽는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일이 아닐까. 시를 통해 읽는다./장종권(시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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