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금소리

멀리서 바람을 타고 오는 잊히지 않는 소리다.
풍금소리가 있는 교정은 웃음이었다.

태양은 시뻘겋게 열이 오른 체 머물기도 했고
구름은 검은 보자기를 펴고서 바쁘게 지나갔다.
온통 교정이 적막으로 잠길 때에는
기어이 참지 못하고 세찬 물세례를 퍼부었다.

풍금소리는 시인을 만들고,
음악가를 만들고,
건축가를 만들고,
마침내 도시의 꿈을 만들었다.

풍금 타는 선생님은 천사였다.
악동들은 천사와 결혼하고 싶어 했다.

도시의 꿈이 이뤄진 날.
천사는 날아가고,
풍금도 사라지고,
악동들은 모두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계간 리토피아 가을호에서

정기재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부천시청 재직.

어떤 사람은 오늘이 너무 바빠서 내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과거 또한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내일의 꿈이 너무 긴박하여서 과거를 돌아볼 짬이 없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람은 과거에만 집착하다가 오늘도 헤매고 내일 또한 준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내일을 꿈꾸면서 오늘의 바쁜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지난날이 아름다운 사람은 내일도 아름다우며 오늘 역시 아름답다. 반대로 내일의 꿈이 아름다운 사람도 지난날이나 오늘이 아름답기 마련이다. 그의 무의식 속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가 있어서가 아닐까. 그의 본능 속에는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동경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유년의 기억은 가끔은 부끄럽기도 하고 돌아보기조차 싫은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이나 기억에서 지워내려는 본능적인 의식도 어쩌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중의 신비스러운 통과의례는 아닐까. 소중하기 짝이 없는 오로지 나만의 것인 유년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오늘의 자신과 내일의 모습을 얼마든지 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학교의 풍금소리에서 우리는 제일 먼저 풍금을 치는 아름다운 여선생님의 얼굴과 손과 그리고 그녀의 꿈같은 노래소리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부드러운 햇볕과 어머니의 손길 같은 바람이 항상 머물던 교정과 교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한 쿵쾅거리는 한 소년의 부끄러운 가슴도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가슴이 왜 그리 뛰었는지, 왜 그 풍금소리가 유독 아직도 들려오는지, 우리는 안다. 그것이 바로 생명의 건강한 율동이었으니 이제 나이 들어 사라져버린 그런 것들이 다시금 그리워진 것이다. 다시금 질풍노도의 시기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그, 강력했던 에너지가 온 세상을 휘감고 돌던 시절이 못견디게 그리워진 것이다.

정기재 시인은 유년의 풍금소리가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다. 그는 오늘 음악에 정통해지고, 건축에 전문가가 되고,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돌아보니 평생 그를 떠나지 않은 것이 풍금소리였음을 안 것이다. 그에게 풍금소리는 주문이고 마법이다. 그리고 그의 에너지이며 죽는 날까지 그를 안내할 아름다운 선생님이다. /장종권(시인, 문화예술소통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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