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현 칼럼] "박근혜 대통령, 정말 신뢰프로세스 가동할 생각이 있다면"

지난 금요일, 인천 아시안게임이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벌써 메달레이스가 한창이다. 대한민국도 이미 금메달을 여러개 획득하며 목표인 종합 2위를 향한 레이스를 순조롭게 시작하였다. 응원단이 참가하지 않아 다소 아쉽지만 북한도 역도에서 엄윤철 선수가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따는 등 선전하고 있다.

논란이 많았지만 이번 개막식의 구호는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이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 아시아의 평화는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중동에서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국과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사실상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반도 역시 아시안게임에 북이 참여하여 다소 분위기가 누그러졌지만 불과 얼마전까지도 한미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둘러싸고 긴장이 고조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시기 벌어지는 아시아인의 축제,인천아시안 게임이 과연 아시아의 평화, 아니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답은 그러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스포츠와 평화의 상관관계

스포츠가 오랜 적대관계를 끝내고 평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동서간의 냉전을 끝내고 데땅트를 가졌왔던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 치열한 전투를 하던 독일과 영국군이 전투를 멈추고 시체를 치우고 공동장례식을 치른 후 축구를 한 1차 대전시기의 크리스마스 휴전 등 그 예는 무수히 많다. 

이는 남북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북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지고 북방외교가 펼쳐지던 노태우 정권시절이지만 아직은 대결과 적대관계가 지배적이었던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은 단일팀을 이루어 우승을 하였고 일본 하늘에 아리랑이 울려퍼지고 한반도기가 올라갔었다. 역사적인 이 사건은 ‘코리아’라는 영화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은 물론이고 우리땅에서 열린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때 남과 북은 단일기를 들고 공동입장을 하였다. 특히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 시기 온 북한의 응원단은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고 반북정서가 뿌리 깊은 부산과 대구의 정서를 녹이고 지역민들 사이에 남북화해와 통일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스포츠 교류가 늘 상호간에 관계개선이라는 좋은 결과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다.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사이에는 축구장에서 발생한 폭력이 전쟁으로 이어져 수천명이 사망한 이른바 축구전쟁이 벌어지기도 하였고 동서간의 냉전이 심각한 시기에는 동서 한 진영이 주최한 올림픽에는 상대편 진영이 참가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남북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대결의 시기 다른팀과의 승부에서는 져도 되지만 남북대결에서는 서로 악착같이 승리에 목을 매기도 하였다.

과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은 얼어붙은 남북관계를 녹이는데 기여할 것인가? 아니면 외려 남북관계의 악화를 가져올 것인가?  

인공기·대북전단

현재와 같은 분위기로는 매우 부정적이다.
우선 남북간의 협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유니버시아드 대회의 흥행과 남북화해 분위기에 기여한 응원단이 불참하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현 정부의 대응이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정부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규정을 어겨가며 인공기 철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모든 참가국의 국기를 철거하는 무리수를 두기도 하였다.

특히 인천아시안게임이 개막한 지 3일째 되는 날 자유북한연합과 북한인민해방전선 회원들은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 통일전망대 부근 주차장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부자를 비난하고, 이승만·박정희·박근혜 대통령을 '영웅, 애국자, 개혁자'로 칭송하는 내용의 전단 20만장과 1달러 1천장, DVD, USB 등이 담긴 풍선 10개를 북으로 날려보내 북을 자극하였다. 북은 이미 지난 13일 대북 선전물을 보내면 물리적 보복을 가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등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상황이었지만 탈북자단체는 이를 무시하였다. 북은 지난 13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전통문을 보내고, '전단 살포가 개시되면 도발 원점과 그 지원 및 지휘세력을 즉시에 초토화 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우리 정부(통일부)는 '확실한 법적 근거 없이 우리 국민의 표현 및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여 대북전단 살포행위를 사실상 방치하였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정부의 평화위협행위에 대한 임무방기이다. 집시법 제12조에 의거해 군사지역 인근에서 작전 수행에 피해를 주는 경우 조치할 수 있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교류협력법상으로도 북으로 물자가 들어가는 것은 통일부 장관의 허락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따라서 사실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탈북자단체의 대북비난 전단 살포행위를 막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아시안게임에 북한선수단이 참여하여 얼어붙은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던 시기에 북의 체제를 비난하는 전단 살포행위를 수수방관하는 것이 북에게 어떠한 신호를 보낼지는 자명하다.

참여정부 시기에도 대북전단을 보냈는데 그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시비냐고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도 물론 북은 반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행위에 대해 정부가 왜 막지 않느냐고 시비하였다. 참여정부 역시 기본적인 입장은 남한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민간단체의 자율적인 행동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그 때는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형성되고 남북 정부간의 신뢰가 높아가던 시기이다. 남녀간에도 서로 사이가 좋을 때는 사소한 시비거리는 묻고 지나갈 수 있지만 불신이 높을 때는 그러하지 않다. 지금과 같이 남북간의 불신이 높은 시기에 자기를 비난하는 행위를 수수방관하는 태도가 어떻게 보일지는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시작도 못한 신뢰프로세스·드레스덴선언

올 3월 28일, 박근혜 대통령은 독일 드레스덴에서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민생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이라는 3대 원칙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남북교류사무실설치’, ‘모자지원 사업’ 등 이른바 통일대박론에 따른 구체적 대북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총괄적인 통일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선언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이번 아시안게임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선언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인공기 크기와 체류비 부담 등 사소한 문제로 오지 못했던 응원단이 왔다면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에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스포츠 교류를 비롯한 남북민간교류의 활성화가 된다면 남북교류 사무실 설치의 필요성을 북이 인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회가 열렸을 때 상대방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이런 저런 조건을 걸면서 상당히 높은 신뢰가 있어야 가능한 제안을 상대방에게 던진다면 그 제안의 진정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으면 그 상대방에게 데이트를 제안하고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물어보는 등 상대방의 마음을 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만남에는 성의를 보이지 않으면서 결혼하겠다고 큰 소리만 쳐서야 그 결혼이 성사될 리 없지 않은가? 남북의 통일을 위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할려면 상대방에게 좋은 신호를 일관되게 보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말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할 생각이 있다면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온 선수단을 초청하라. 또한 연이어 열리는 2014 인천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는 리분희와 현정화의 만남을 적극 주선하라.  짧은 합숙훈련만으로 사상 처음 중국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한 탁구단일팀 ‘코리아’의 기억은 통일이 왜 대박인지를 증명하는 분명한 증거가 아닐까?

 

 

 

 [김두현 칼럼]
김두현 /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 사무처장.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한국지역인터넷신문협의회 평화뉴스=인천뉴스 교류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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