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불통(不通)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통은 고치면 된다. 불통은 행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당대표 조차 ‘소아병적’이라고 에둘러 비판했을까마는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행태에 국한된 문제다. 마음과 귀를 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정책(政策)은 다르다. 정책에는 원칙이 있어야 하고 논리적 타당성과 논리적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철학(哲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정권초기 ‘경제민주화’가 정책적 화두로 떠올랐을 때만 해도, 경제민주화의 당위성과 경제활성화의 현실론 사이에서 벌어진 정책적 논쟁은 사회적 공론을 형성해가는 논쟁적 비판의 수위를 놓치지 않았다. 오히려 시장과 사회공동체를 향한 정책적 판단이 기본적으로는 전략적으로 선택적인 속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준거(準據)에 따른 가치충돌(value conflict)이나 사회적 선호(social preference)는 충분히 예견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다원화된 사회에서라면 심지어 바람직하기까지 한 현상이었다.

보편적 복지냐 선택적 복지냐를 놓고 이른바 ‘복지논쟁’이 벌어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두 논쟁진영은 서로 다른 철학적 지평에 서 있었지만, 그랬던 만큼 서로 다르기는 하지만 뚜렷한 각자의 정책적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가지 사정에 따라 사회적 선호가 다르고 정책효과가 서로 다를지언정, 본질적으로는 서로 무엇이 옳고 그르냐를 따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사태에 이르러서는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초기에는 통합진보당과 그 구성원들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내 한국사회에 여전히 내재돼 있는 레드컴플렉스가 자극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법적인 강제에 의한 정당해산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딛고 서 있는 철학이 다르고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지만, 그랬다면 오히려 제도적 강제력보다는 논쟁과 비판이 동원됐어야 했다.

‘꼼수증세’ 비판에 직면했던 담배값 인상과 그에 연이은 연말정산 대란, ‘서민증세’ 논란으로 이어진 주민세·자동차세 인상안, ‘무상보육 포기’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전업주부 보육료 차등지원안까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정책적 오류와 혼란에 이르러서는 명확한 정책목표도 기대되는 정책효과도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증세를 했으면 복지가 확대되거나, 복지가 그대로라면 증세라도 없어야 했다. 무엇보다 서민증세는 없어야 했다. 오히려 부자감세 논란을 야기하고 있는 법인세 인하는 아직도 기대했던 만큼의 투자나 고용확대 효과가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실정이다.

증세냐 복지냐 논쟁이 벌어진다면, 백번 양보해서 복지가 포퓰리즘일 수도 있다고 물러날 수도 있다. 복지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마구 남발할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단기적으로 한정된 자원을 투입해서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복지는 지속적이어야 하고, 고정된 지출이 수반되어야 하고, 경향적으로 확대될 수 밖에 없는 정책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복지는 형평에 맞아야 하고, 사회적 균형을 확대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부족한 것이 걱정이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이 걱정(不患寡而患不均)’이라는 공자(孔子) 말씀을 곰곰이 되새겨 볼 일이다.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는 원칙과 논리, 일관성이 중요하다. 그래야 형평에 따른 시비나 논란의 소지도 없거니와 정책에 대한 신뢰도 제고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어떠한 정책목표를 설정할 것인가 하는 데 대한 깊은 철학적 성찰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하나의 정책이 어떠한 철학적 기반 위에 수립되는가에 따라 정책이 실현되는 방법과 논리, 그리고 그 구현된 결과와 효과는 천지차이이기 때문이다.

정책이 구체적인 실행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응당 방법론적 논쟁에 몰입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지점에서조차 여전히 철학적 문제제기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면, 정책의 실패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더 깊은 철학적 고민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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