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분단과 냉전의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불시에 벌어진 마크 리퍼트(Mark Lippert)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우리사회에 묘한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건의 정황은 한 극단주의자의 돌발적인 행동이었지만, 난데없이 ‘국가보안법’이 등장하고 친미(親美)와 종북(從北)의 색깔론 덧씌우기와 이념적 편가르기가 시도되고 있다.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는 정치적 의미부여까지는 그렇다고해도, 미국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부채춤 퍼포먼스에 석고대죄 단식까지 볼썽사나운 장면들도 연출되고 있다.

테러와 폭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막론하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긴 하지만, 유독 이번 사건에 왜 이처럼 예민한 과잉반응이 조장되고 있는지, 사회적 이성(理性)이 마비되기 직전의 전조증상(前兆症狀)같은 과민반응은 여전히 우려스럽기도 하고 도무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기실 이런 현상들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전히 우리사회가 식민지적 경험과 냉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유독 한반도에서만큼 ‘냉전’은 여전히 진행형이기는 하지만, 반공주의(反共主義)와 반제국주의(反帝國主義)의 의식적 기저(基底) 위에 한국사회의 이념갈등이 극단적으로 감정적인 대립의 양태를 보여주는 것은 한국사회의 역사적·정치적 특수성으로부터 비롯되는 바, ‘분단’으로부터의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e)이 강하게 작용하는 데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이같은 상황에서는 정치적으로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의 개념조차 왜곡시킬 만큼의 기형적인 이념지형이 형성되기 십상이라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도 ‘우파 종북주의자’의 착오적 시대인식이 만들어낸 돌출적인 행위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런 착오적인 망상에서 비롯된 사건을 두고 ‘한미동맹’에 ‘외교적 문제’ 급기야 ‘국가보안법’까지 등장하는 모습은 한편으로 호들갑스럽기도 하고 사회병리학(social pathology)적으로 한국사회의 이념적 건강성은 여전히 회복이 요원한 듯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말하자면 ‘친미우파’와 ‘종북우파’의 원초적인 감정싸움이라고나 할까?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은 우리사회의 이성(理性)을 마비시키고 이념적 내전(內戰)을 일상화한다.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은 ‘반북(反北)’과 ‘반미(反美)’의 부정적 정체성을 고착화하고 이념적 억압상태를 반복적으로 재생산한다. 이념이 억압된 상태에서 사회적 공론장(public sphere)은 폐쇄될 수 밖에 없고, 공론장이 폐쇄된 상태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히 후퇴할 수 밖에 없다.

정작 이번 사건에서 우려되는 지점은 ‘한미동맹’이 아니라 우리사회의 ‘사회적 이성’이다. 가뜩이나 ‘남북관계’나 ‘한미관계’ 같은 대외적 관계의 문제가 종종 과도하게 정치화(politicization)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물론 이같은 문제들이 여타의 사회정책상의 의제(agenda)들과는 달리 이념적으로 추상화되기 쉬운 거시적인 담론기반을 갖는다는 종별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지만, 논점(論點)이 본질로부터 이탈하여 반이성적(反理性的)인 분열과 갈등을 표출하는 요인이나 계기가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이 아니라 정신병리학(psychopathology)적 진단이 동원되었어야 할 이번 사건의 이면(裏面)에 엿보이는 우리사회의 씁쓸하고 우려스러운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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