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역사에서 배워야 할 인천 공직 사회의 현실 과제

▲ 박철민
마오쩌둥은 간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박할 분은 많겠지만 제 느낌으로 그는 모 아니면 도였죠. 그는 장단점을 인식하고 수용하는데 겸손하고 솔직했습니다. 그래서 문화대혁명 당시 그의 폭정을 아는 지식인들도 그를 쉽게 부정하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물론 토지재분배로 오랜 중국 인민들의 염원을 해결한 그를 절대다수의 농민과 인민들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처럼!
 
그는 살아 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산주의도 장단점 있다. 경험은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의 총합이다. 공산주의의 근본이 마르크스인 것은 맞다. 그러나 칼 마르크스의 출발은 칸트와 헤겔이니 다 배워라. 마르크스만 달달 아는 너희들은 절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란 내가 아는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앞의 일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이다.'
 
'당나라 태종은 비록 역사상 최악의 마녀를 부인으로 두었고, 고구려의 호태왕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지만, 중국 역사상 최대의 명군입니다. 이유는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기질 중 수용성과 경고성을 해석하는 기준의 차이에 기인합니다. 수용성은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응으로 문제를 만들지 않는 현명함을 낳고, 경고성은 한 번 잘못한 일의 반복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를 미리 알려주는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을지문덕에게 치욕의 패배를 당하고 고구려를 삼키겠다는 야욕을 포기한 수양제는, 아버지를 독살하고 제위에 오른 야심만큼 저만 잘 살고 배부르면 장땡인 한량이었습니다.그가 한 일이란 그저 폭군의 대명사 주나라 걸왕 마저도 뒷짐 져야 할 일 뿐이었지요. 어느 나라든, 지방정부든, 무능한 사람이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 많은 일을 벌이다보면, 너무 많이 먹으면 탈나는 배처럼 종내는 큰 탈이 납니다. 주지육림의 대명사인 걸왕께서도 웃어야 했으니, 그의 폭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여기서 잠시 그의 폭정 몇 개 들여다봅니다. ‘현인궁’이라는 아방궁에 버금가는 궁궐축성에 든 나라 금고 반 거덜은 그저 맛보기, 4대강 대운하에 버금가는 ‘통제거’라는 운하 축성과 어도라는 버드나무길 조성에 백성 혈세 제로로 만들기. 장강 유람용 어좌선 수만 척 축조에 수나라 도산, 수백 리 광대규모의 개인 서원 조성에 꽃잎 다지고, 겨울철 대비 비단 꽃잎 치장에 모든 궁녀 동원 등, 또한 국가의 각종 피로연에는 수만 명이 한 달 이상을 연주하고 놀아대었다고 야사는 전할 뿐입니다.
 
하여 당 태조 이연은 이러한 양제의 폭정을 틈타 너무나도 쉽게 장안을 함락했고, 그의 아들 태종은 수양제의 폭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중국 역사상 가장 칭송받고 존경받는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정관정요'는 그냥 쓰여진 책이 아닌 것입니다. 어느 왕조, 어느 국가나 새로이 시작하는 그루터기에는 사연도 많고 이야기는 부지기수 입니다. 누구나 시작할 때는 잘 하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제 5 공화국 전두환의 취임일성도 바로 '정의 사회 구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게 되나요? 사람이라는 고등동물로 태어나 최소한의 지구상의 주인으로 행세하고픈 열망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는 동안은 최대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기본욕구가 없는 인간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가장 어려운 과제가 내 자신의 존재를 알면서도 마오쩌둥이나 당 태종 같이 반면교사의 교훈을 알아가면서 지켜갈 줄 아는 지혜로운 삶의 혁신에 있음을 알기에 오늘도 우리 생은 대장정인 것입니다.중국인들은 말합니다,
 
'메이꽌시, 만만 라이; 괜찮으니 천천히 가세요.' 그렇습니다. 동북공정으로 우리어 역사를 부정하는 중국인이 아니라면 그들처럼 우리도 이제 천천히 가도 될 것 같습니다. 천천히 가도 언젠가는 목적지에 갑니다. 그 목적지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다 가는 곳이지요. 모양 떨며 살든, 권력을 쥐고 흔들든, 가난하고 배고프든, 사랑하다 지치든, 우리는 모두가 그 목적지에 갑니다. '현재는 없습니다. 과거와 미래, 즉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일 밖에 없지요.'
 
지금 인천도 너무 급합니다. 급하면 체하고 그러면 앞의 경우처럼 먼저 가지요. 지도자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도자 주위의 사람들은 바른 말을 할 줄 알아야 하지요. 그런데, 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히지요. 먹고 살아야 한다는 당위성에 자신을 규격품으로 만드는 거지요. 뭔가 되고 싶고, 어딘가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것은 최상위 지도자만이 선택할 권리가 있거든요. 비유 맞춰 사는 거 좋습니다. 그래야 나도 편하고 가족들의 생계도 보장되지요.
 
그러나 웰빙(Wellbeing)보다 중요한 것은 웰다잉(Welldying), 즉 자신의 자아를 찾고 존재의미를 깨닫고 가는 삶이지요. 인천의 지도자는 좀더 포괄적으로 인재를 바라보고, 주위의 사람들은 이제 그만 정도를 가시지요. 꼭 해야할 말은 소신 있게 아끼지 말고 비록 자신의 자리가 위태롭다해도. 조선시대의 상소나 삼사제도를 부활할 수도 없으니 각자 자신의 양심에 맞길 수밖에 없지만 말입니다.
 
조금 빗나간 얘깁니다만, 인천의 정실 인사가 말썽인 듯 합니다. 민선 6기만에 비로소 인천 출신의 리더를 선택했는데, 알고보니 정실인사, 낙하산 인사의 강도가 심하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봐도 심하고 전임 시장 때 '아부의 왕'으,로 승승장구했던 인사들도 도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모르지만, 무리없이 승승장구하더군요. 물론 그들의 능력이야 며느리도 모르는 거죠.
세계 어디에나 있는 선출직의 한계이자 보상(?)주의인 "엽관인사"가 개입되니까요. 게다가 현 시장은 너무나 오랜 기간 타지에 있어서 인천 사정을 잘 모르지요.
 
그리 중요한 컬럼은 아닙니다만 나름 이유는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이 타인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홀쭉해 지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낙하산인사 비판하는 당사자들도 아마 자신의 존재 좀 알아달라고 칭얼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아부든 줄을 댔든 한 자리 꿰차고 들어간 인사들은 자신들을 몹시 자랑스러워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기 바랍니다. 마오쩌둥과 그의 동료들이 비교적 인사에는 적확하려 애썼듯이, 로마의 민주정이 왜 나름 뚜렷한 민주주의로 각인되는지,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초라하면 그렇게라도 해서 존재를 부각시키려 하는지에 대한 부끄러움을. 그리고 타인을 인정하는 겸손한 '갑'과 실력을 갖추고 존재의 위치를 드러내는 당당한 '을'이 공존하는 사회만이 진정한 사회라는 것을. 그리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에게 우리는 '휴머니스트'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달아준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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