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향유는 새로운 인간의 질서를 구축한다.

양자역학(리처드 파인만)에서 물질이 치환되는 에너지 파동(소립자)의 문제는, 물질이 단지 에너지라는 구성요소로만 전이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에 정신적인 입체감까지 부여하고 삶의 새로운 존재감과 인간내면 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폭시켜 준다는 과학 철학적 이해의 틀 때문이다.

같은 얘기로 역사는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성의 동물인 인간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은 그릇이지만, 최초의 인류인 루시의 탄생 이후 진보적인 진화라는 인간들의 과학적이고 물리적인 생존양식을 담으며 한층 풍성해졌으므로, 인간의 변화는 필요충분조건이고 과학적 이해의 요건을 갖는다.

이렇듯 새로운 세계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는 이면에는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적 자각이 먼저 이루어지며 그 내면에는 지식을 함유한 인간만의 과학 철학적 양식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움에 열광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게 열적억으로 매달린다. 헌사는 칭찬이며 상장이며 종국에는 금전적 보상이 따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고 금전의 유혹은 신혼여행지에서의 불륜도 눈 감게 한다.

같은 식물이라도 따뜻한 관심 속에 자라난 식물들의 성장이 더 빠르며 영양도 우수하다. 두말할 것도 없이 칭찬이나 관심(특히 물질적 보상)은 비단 식물이나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양자역학의 파인만을 낳은 것도,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은 절대 아니다.

어느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은 죽어간다는 현실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사냥할 때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인다. 나는 죽어가는 인간들이 고통에 몸부림쳐 하며 살려달라고 비는 모습에 전율과 쾌감을 느낀다. 나는 조용히 자랐고 누구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지만, 그런 모습을 보고 있을 때의 나는 바로 특수부대원이고 절대 군주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선과 악의 양면의 경계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적확하게 투영할 때다. 교과서식의 배움대로 성선설과 성악설 따위를 논하지는 말자. 어느 철학자이건, 그 어느 일반적인 사람이건 선과 악 사이를 유영하며 인생은 공존의 주기를 갖는다. 다행인 것은 인간이 평생 지녀야 할 학습능력, 지혜의 근원으로 얻어질 수 있는 열매인 지적능력이 있어서 역사와 철학을 공유하고 문화와 과학의 지평을 넓혀가며 얻는 희열이 동반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이 동반하지 않는 인간의 삶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인간의 15%에게서 사이코패스의 증후군을 보이고 또 15%에서 동성애적 성향이 감지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애서 부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모호하고 간사한 동물이며,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오히려 인간적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생겨난 지 400만 년이 넘은 직립보행형 ‘인간(Human Being)만이 갖는 특질인 유전법칙에 긍정적인 진화의 메스를 대는 일’이 생기게 될 줄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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