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경제의 구조변화는 고용구조의 변화를 수반하고, 고용구조의 변화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촉발한다. 국가의 고용정책은 그 사회의 노동시장구조를 결정짓고, 궁극적으로 사회구조의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런 점에서 국가의 기본적인 고용정책과 철학은 그 사회의 성격까지도 결정지을 만큼 중요하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대표되는 시장체제의 일련의 변화과정은 이내 개별국가 내에서 자본의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확대하는 반면 노동시장은 억압적으로 제어하는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더 많은 이윤을 쫓아 각국의 자본은 초국적 차원의 무조건적인 경쟁에 뛰어들었고, 노동자들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본간 경쟁에 희생양으로 내몰리는 상황에 봉착했다.

노동자들은 무차별적으로 제공되는 허위의식(false consciousness)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계급투쟁과 사회혁명에 대한 기대는 노동운동에서조차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노조는 확연히 약화되었고, 투쟁의 지형은 더욱 불투명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는 노동과정의 재편과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기초한 노동력의 이용 및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기획해왔다.

우리나라에서 고용구조상의 커다란 변화가 있었던 1997년이나 2006년의 경우를 되짚어 봐도, 대량해고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를 합법화한 1997년 노동법 개정이나, 비정규직 근로조건 보호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비정규직 양산’으로 귀결된 2006년 노동법 개정이, 당초 의도했던 바 ‘불가피한 고용유연성’이나 ‘노동시장의 건전한 발전’ 보다는 사실상 생산비용 절감이나 이윤율 극대화 수준에서 제한되었다는 데 문제의 본질이 있는 것처럼, 작금에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도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라는 정책효과에 얼마나 근접해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내용하는 ‘취업규칙 변경’이나 저성과자 등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 완화’ 같은 쟁점 현안도, 종국적으로는 정규직의 기득권 축소가 비정규직의 보호강화나 청년고용의 확대로 이어진다는 보장을 확신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노동계가 정부의 노동개혁을 놓고 결국에는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 양산’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의구심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지금 노동계는 비정규직 같은 양적 유연화에 이어 임금피크제 같은 기능적 유연화 마저 강요된 마당에, 그렇다면 기업과 사용자 측에서 무엇을 양보한 것이 있는지 묻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 정규직과 하청 비정규직’으로 대비되는 그 현실적 간극이 엄연한 마당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양극화 문제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책효과가 미지수라는 점과 별도로, 개혁의 불가피성은 바로 여기에 기인한다.

부득이하게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내하청이나 특수고용직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지난해 통계청 공식집계만 가지고 보더라도 비정규직은 전체 근로자의 32.4%를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받는 임금평균은 월 145만 3천원으로 정규직 임금평균의 55.8%에 불과했다.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이 통과된 지난 2006년과 비교해봐도, 비정규직 규모는 545만명에서 607만명으로 확연하게 늘어났고,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상대적 임금비율은 62.8%에서 55.8%로 그 격차는 확연하게 더 벌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비율은 22.4%에 그쳐 OECD 평균 53.8%의 절반수준에 불과했다. 여기에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은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평균 40%대에 머물고 있다.

사회적으로 만연된 불평등은 노동시장 내부에서조차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심화된 차별과 격차, 갈등의 양태로 표출되고 있다.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차별도 문제지만 양극화된 사회구조는 더 크고 근본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미비한 사회안전망은 분명히 해소돼야 할 중요한 정책과제다.

긴밀하고도 광범위한 대화구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동개혁은 무엇보다 사회구조의 기본틀에 해당하는 문제라는 점에서 더 그러하다. 한동안 결렬됐던 노사정 위원회를 복원하든 아니면 또 다른 정책협의체를 구성하든, 실효적인 논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와 합의, 공감대가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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