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역사교과서와 ‘두 국민 전략’

어느 사회에서나 균열(cleavage)과 갈등(conflict)의 요인들은 내재하기 마련이다. 개인과 집단을 막론하고 이해관계가 상이하고 상호 간의 요구가 상충되는 마당에 다양한 균열과 갈등의 구조들이 만들어지는 현상은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사회에서도 지역과 성별, 학력이나 사회계층 혹은 계급, 그리고 이념과 세대 등에 따른 균열의 요인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적 갈등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혀왔다. 개중에 어느 한 요인이 특정하게 부각돼 진영(陣營)을 양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때, 지난 70-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를 ‘사회모순(social contradiction)’이라는 개념으로 읽어내기도 했다.

분단을 요인으로 하는 ‘민족모순’이나 계급갈등을 요인으로 하는 ‘계급모순’ 같은 이른바 ‘기본모순(基本矛盾)’에 기반해 사회의 성격(social character)이나 발전단계(social development stage)를 진단하기도 하고, ‘반독재’나 ‘민주화’, ‘통일’ 같은 당면하고 있는 주요현안이나 사회적 과제들을 추려내 ‘주요모순(主要矛盾)’을 설정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특정지역 출신의 저학력 여성 노동자’에게서 표출되는 사회적 모순은 지역과 학력, 성별과 계층에 따른 사회적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그러한 갈등으로부터 기인하여 이러한 요소들은 고스란히 사회적 균열의 요인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적으로 형성된 균열의 구조가 확인되고, 갈등이 표출되는 주요모순이 두드러지기 시작하면, 이른바 전선(戰線)이 형성되고 운동(social movement)이 조직화되기 시작한다.

목적의식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사회운동의 측면에서 봤을 때 이러한 사회적 모순들은 분명히 투쟁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공학적이고 전략적인 정치의 측면에서 이러한 균열과 갈등, 모순들은 사뭇 다르게 읽혀지기도 한다.

정치적 배제와 포섭이라는 측면에서, 특정계층이나 특정지역을 배제(exclusion)함으로써 그 외의 계층이나 지역을 정치적으로 포섭(cooptation)하거나 동원(mobilization)함으로써 지지(支持)를 결집하는 전략은 이미 우리 정치사(政治史)에서 고전적이기도 하거니와, 영국 랭커스터(Lancaster) 대학의 사회학 교수 밥 제솝(Bob Jessop)에 의해 이미 ‘두 국민 전략(two nation strategy)’이라고 명명된 바 있는, 권위주의의 전형적인 전략에 속한다.

한국사회에서 ‘분단’이라는 역사적 특수성에 기인해 이른바 ‘종북(從北)몰이’에 나서거나, 특정지역에 대한 사회적 배제를 의도해 지역갈등을 조장하거나 부추기는 행위,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른바 ‘세대간 도적질(inter-generational theft)’ 논란을 야기했던 연금개혁이나, 노동시장 내부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선긋기와 편가르기, 임금피크제를 청년실업과 연계해 세대간 일자리 갈등으로 포장하고자 시도하기도 했던 노동개혁 같은 것들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두 국민 전략’에 따라 기획된 의도된 편가르기는 전략적으로 선택적인 정치지형(政治地形)을 만들어내고, 그 내부와 외부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목적을 위해 행동하는 다양한 세력들에게 불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합리적인 사회적 균형은 무너지고 경쟁과 충돌이 가속화되는 상황은 특정한 정치전략이 지배적인 헤게모니(hegemony)를 효과적으로 확보하는 데 결정적으로 유리한 국면(政治局面)을 창출하기 마련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작금에 진행되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이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그 테마의 무게에 비추어 진작부터 교육적 차원을 이미 넘어서버린 사회적 논쟁이기는 하다. 물론 사회적 논쟁이 정치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다반사이기는 하지만 이 논쟁은 본질적으로 역사인식(歷史認識)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논쟁이다.

역사해석에 관한 진보적 시각과 보수적 시각, 혹은 좌파적 시각과 우파적 시각을 나누는 것 부터가 섣부르기도 하지만, 좌파적·우파적 진영논리(陣營論理)를 떠나 이 논쟁의 발단은 국가(國家)가 역사해석(歷史解釋)을 독점(獨占)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부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논쟁의 논점은 역사해석에 대한 다양성과 다원성을 국가가 인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 여부에 초점을 맞춰 유지되어야 할 것이며, 혹여라도 이 논쟁으로 인해 종북몰이가 재연되거나 정치적 동원이 수반되는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것이 또 하나의 ‘두 국민 전략’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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