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정부가 당신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매달 100만원의 생활비를 챙겨준다면? 당신의 소득이 많든 적든, 아니면 나이가 많든 적든, 심지어 샐러리맨이든 주부이든 군인이든 학생이든 무직자이든 아무런 상관없이 당신이 지정한 은행계좌에 매달 꼬박꼬박 100만원을 넣어준다면, 당신의 삶과 당신의 생활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세상에 그런 경우가 어디 있냐고? 그리고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어떻게 충당하겠느냐고? 극단적인 포퓰리즘이거나 사회주의적인 발상이거나, 아니면 다같이 놀고먹다가 나라 말아먹을 소리라고?

그 ‘불가능한 상상’이 지금 북유럽의 복지국가 핀란드에서 현실화할 조짐이다. 지난 6일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Telegraph)는 핀란드 정부가 전 국민을 상대로 월 800유로(약 103만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6년말까지 모델을 개발하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거쳐 전면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이같은 ‘기본소득제(basic income)’는 하지만 핀란드에 국한돼 새삼스레 제안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아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이미 실험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며, 미국의 알래스카에서는 본격 시행되고 있기도 하다. 룰라(Lula) 대통령 시절인 2003년부터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 브라질의 시민소득 프로그램도 여기에 해당한다.

철학적으로는 프랑스의 몽테스키외(Montesquieu)나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등을 거쳐 대표적인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로 일컬어지는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에 의해 1962년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라는 개념으로 정립되기도 했으며, 제도적으로는 1969년 미국의 닉슨(Nixon) 행정부에 의해서 도입이 시도되기도 했다.

기본소득제가 의도하는 정책목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모든 국민들에게 빈곤선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을 만큼의 기본소득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이를 통해 시장구매력을 확보하고 내수증진과 경기순환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 기본소득제가 의도하는 정책효과다.

정부는 수혜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필요한 행정력이나 별도의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되고, 기본소득을 보편화한다고 해도 복지부분에서 기존의 재정지출 규모보다 비용이 급격하게 증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고 복지를 보편화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효율적인 ‘작은 정부’를 구현할 수 있다.

생산성(productivity)과 복지(welfare)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우파와 좌파의 경계를 생성하지도 않는다. 핀란드에서 기본소득제를 정식 제안한 집권 중도당(Suomen Keskusta)은 중도우파적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으며, 좌파의 녹색당(Vihrea liitto)과 좌익동맹(Vasemmisto liitto)은 물론 우파의 국민연합당(Kansallinen Kokoomus)이나 핀란드인당(Perussuomalaiset)도 도입에 긍정적인 모양새다.

제도의 시행 이후 빈민들이 자활의지를 회복하고 있다는 나미비아의 사례보고는 이 제도가 복지병을 야기하거나 노동의욕을 저하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킨다. 소득이 발생함으로 인해 급여가 중단되거나 축소되는 기존 제도의 모순점을 보완한다는 점에서 핀란드 정부도 이 제도를 통해 실업률이 저하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선별적 사회보장 프로그램에 따라 특정집단에 한해 선별적으로 부여돼 왔던 모든 사회적 혜택이 취소되는 것에 대한 반대나, 추가소득에 대한 기대로 인해 노동력 공급이 늘어날 경우 전사회적으로 임금수준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한 비판은 논란거리로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같은 논란거리도 절대빈곤의 해소, 사회적 재분배와 구매력 창출에 대한 기대효과를 넘어서지는 못한다.

착취와 불평등, 복지와 무임승차 논쟁을 넘어 사회경제적 구조와 게임의 룰을 뒤바꿀 거대한 실험이 준비되고 있다. 핀란드의 기본소득제 실험에 주목한다. / 고성원 (인천미래구상포럼 대표패널/ 인하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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