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남동소방서 구급실습생 고나연

▲ 구급실습생 고나연
새해를 반기는 들뜬 공기가 만연한 2015년 12월, 나의 마지막 실습이 시작되었다.

내가 재학 중인 가천대학교 응급구조학과의 커리큘럼에는 소방 실습 2번, 병원 실습 2번으로 총 4번의 실습기회가 있다. 그리고 이번이 나의 두 번째 소방 실습이자, 마지막 실습이었다.

처음에 내가 배정받은 곳이 남동소방서라는 것을 알았을 때, 솔직히 먼저 걱정이 앞섰다. 지나가는 말로 남동소방서가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출동이 많다고 들었었기 때문이다. 사실 예전의 나였으면 ‘재밌겠다’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학연수를 위한 휴학을 하여 전공 공부와 멀어져있었던 일 년의 공백은 나에게 너무나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하루하루 걱정과 두려움의 나날들을 보내고 찾아온 12월 28일, 남동소방서 만수센터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다.

실습 첫날, 내가 처음 출동한 사건의 출동지령서에는 ‘아들이 움직이지 않음.’이라고 적혀져있었다.

나는 글을 보자마자 응급상황이라는 판단이 들었고,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심폐소생술은 30:2, 약물은 에피네프린, 아니 의식부터 확인해야지 그 다음 맥박..’과 같은 너무나 어설프고 정리되지 못한 지식이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현장에 도착하고 구급차 문의 잠금이 풀리자 나는 제세동기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바로 건물의 환자가 있다는 건물 4층까지 뛰어 올라가 ‘119예요!’ 소리를 질렀다. 문이 열리고 환자를 마주하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움직이지 않는다는 환자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있는 자세로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이미 사망하고 몇 시간 지난 환자에게서 관찰되어지는 아래턱 사후강직과 시반이 보였고, 심장의 움직임을 알려주는 심전도 기계에서는 영화에서만 듣고 싶은 ‘삐-’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렇게 나의 첫 번째 환자는 DOA(Dead on arrival, 도착 시 사망)환자였다.

실습이 마무리를 향해 갈수록 환자를 마주하는 것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하루에 출동을 두 번 나가던 일곱 번을 나가던 똑같은 환자는 없었다. 환자들은 모두 아픈 곳이 다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달랐다.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는 환자도 있었고 교통사고 후 너무 놀라 말을 할 수 없던 환자도 있었다. 경험할수록, 마주할수록 어려운 것이 바로 환자였다. 하지만 어떤 환자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판단하고 처치하는 반장님들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배우고 공부해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훌륭한 구급대원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때로는 구급차 앞을 가로막는 차들이 밉기도 하고, 우리를 개인택시처럼 부르고 대하는 모습에 화도 나고, 이유 없이 짜증부터 내는 환자, 보호자들에게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것마저 인내해야하는 것이 바로 소방관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먼저 몸도 마음도 건강한 소방관이 되기 위해 체력단련, 자기계발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실습은 복학과 취업에 관한 고민으로 지쳐있던 나를 다시 일으켜, 새로운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하고 고마운 기회가 되었다.

이러한 뜻 깊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교수님, 남동소방서 만수센터 대원님들 그리고 옆에서 가장 많이 챙겨주신 우리 훌륭한 만수센터 반장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꼭 내년에 소방서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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