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3호

 그녀는 탐색 중이다.

누군가 변덕을 부리거나 그녀를 믿지 못할 때면

주저 없이 재탐색을 시도한다.

창에 불이 켜진 동안은 쉬지 않는다

그녀의 혀는 구강기 아이처럼 말랑할 것이다

그녀는 좌우로 굽은 도로를 기억한다.

들판과 강물을 기억한다.

들판과 강물 사이 절집과 밥집의 내력을 알려준다

그녀가 사라졌다.

정지된 화면은 막 지나온 해변을 꽉 물고 있다

탐색에 몰두하던 그녀가 아무것도 찾지 않는다

어떤 견딜 수 없는 혼란의 순간이

그녀에게 찾아온 것일까

그녀가 사라진 이유를 더듬어 본다

서둘러 봄을 맞으려고 먼 바다에 온 때문인가

바닷물이 노을에 물든 때문인가

노을에 취한 우리가 서로를 더듬거린 때문인가

억새가 물결치는 밤이다

무심한 듯 고갯길을 내려오는데

그녀의 음성이 귓가에 맴돈다.

-잠시 후 좌회전입니다

-좌회전 후 직진입니다 

   -2016 아라문학 봄호 권순 <근작 조명>에서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바둑대결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의 인공지능에 점령당해 그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명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예전에는 최소한 수십 개씩 외우던 전화번호도 이제는 하나도 제대로 못 외우고 휴대폰에게 물어본다. 자동차로 시골이나 여름휴가를 가려고 계획하면 보험회사에서 준 휴가철 지도를 찾아보면서 미리 낮선 길을 찾아서 머릿속에 입력하곤 하였다. 이제는 예쁜 목소리의 ‘내비 양’ ‘미스 김’ ‘여자 3호’가 비서처럼 친절하게 안내한다. 가끔, 그녀들에게 견딜 수 없는 혼란이 오거나, 괜히 심통을 부릴 때, 길 한복판에 서서 머리가 하얗게 된다. 얼른 그녀들이 화를 풀고 좌회전, 우회전, 직진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길 학수고대한다. 디지털 기기는 매일 LTE급 “빠름빠름”으로 진화한다. 어느날, 명령에 불복종하고 그들이 컴퓨터 속에서 사라진다면 우리는, 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될까? 아득하다. /이외현(시인, 아라문학 편집장)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