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Brexit)의 정치사회학

노동계급과 저소득층은 일자리와 복지를 걱정했고, 노년층은 과거의 향수에 젖어 있었다. 이민자와 난민들은 배격됐고, 국가주의자들은 자부심과 우월감으로 팽배했다. 보편적 이성은 뒤로 감춰지고,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극심하고 장기적인 저성장과 살인적인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재정긴축만을 강요해온 유럽의회의 압박에 맞서 엑시트(exit) 일보직전까지 갔던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끝내 EU 탈퇴의 문턱에서 주저앉은데 반해, 2016년 영국은 사실상의 특권적 지위를 요구했고 스스로 고립을 선택했다.

자본주의 종주국으로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마다하지 않았던 영국에서, 스스로 시장 통합화를 거부하는 결과가 끝내 초래될 것인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영국은 지금 노동력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근간으로 하는 세계화 추세에 대해 자국의 이익이 확보되지 않는 한 거부하겠다는 의사 만큼은 분명히 밝히고 있는 양태다.

통합화와 파편화를 반복해온 자본주의 역사의 흐름에서, 블록(bloc)을 벗어나는 이번 영국의 선택이 새로운 질서를 예고하는 시그널이거나 전주곡이 될지 아닐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한때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던 ‘그렉시트(Grexit)’나 ‘포렉시트(Porexit)’와 달리, ‘브렉시트(Brexit)’를 둘러싸고 엿보이는 정치현상과 사회현상은 예컨대 대공황기의 미국이나 히틀러 시대 독일의 그것과 충분히 닮아있다는 점에서 예의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브렉시트 운동이 진행되면서 영국 내 인종차별범죄나 혐오범죄는 현저하게 증가했고, 그것과 비례해 ‘영국적인 것’이나 애국주의에 대한 선호 또한 분명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계 이민자에 대한 혐오나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적 배제는 물론 폴란드 같은 유럽 내 이민자들에 대한 거부와 배격 조차 사회적으로 노골화되는 양상이다. 극우 정치인들은 이민자들을 공공연한 배제의 대상으로 지목하고, 대중들이 여기에 동조하는 이런 모양새는, 우파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양태가 아닐 수 없다.

1930년대 이전까지 전 세계 제조업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급속하게 생산력을 증대해가던 미국 경제가 갑작스런 공황국면에 직면한 이래로, 심지어 국가의 공공적인 시장개입을 주장하는 케인즈(Keynes)에게 조차도 공산주의 성향(soft on Communism)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될 정도로, 미국사회에서 특정의 이념과 사회적 집단에 대한 반대와 배격은 광범위하게 노골적이었고 사회적 이성은 충분히 작동되지 못했다. 같은 시기, 사회적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하층계급을 중심으로 열렬하고 광신도적인 선동적 지지를 획득한 히틀러가 유대인을 비난하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부추기면서 사회적 이성을 마비시키고 쇼비니즘 광풍을 자극했던 사례의 논리구조나 의식구조도 모두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소 간에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극우적인 사회현상들이 개별국가들 사이에서 확연하게 확산추세에 있다는 점이다. 브렉시트에 자극받은 유럽국가들이 유럽연합의 근간을 이루고있는 공동체주의를 공공연히 거부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고, 대선 열기에 한창인 미국에서도 트럼프 류의 원초적인 집단이기주의가 지지를 결집해가는 추세에 있다.

좌파의 포퓰리즘 만큼이나 우파의 포퓰리즘 또한 대단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좌파의 포퓰리즘이 주로 사회적 균열과 사회적 불만을 자극하는 데서 비롯된다면, 우파의 포퓰리즘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이기적 욕망을 자극하고 사회적 이성을 마비시킨다.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반(反)이민’으로 촉발된 브렉시트가 시장의 항시적인 변동성이나 잠재적인 위기 혹은 사회정책을 둘러싼 재정적인 갈등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개연성이나, 경제적인 측면의 시장 파편화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은 현재로서 높아 보이지 않지만, 그 이면에 엿보이는 정치사회적인 현상이 이후 무엇을 예고하게 될지는 분명히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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