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v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을 주시한다.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불투명한 것을 투명하게, 불안정한 것을 안정되게. 잘못된 캠페인이라도 일관된 캠페인은 자신의 지지기반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선거는 단순한 게임이며, 바르고 옳은 것 보다는 틀리더라도 강하고 센 것이 이긴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야말로 유권자의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며, 좌고우면하는 모습은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든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 보다, 광기어린 소신이라도 확신에 찬 모습이야말로 선거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대중은 원초적인 확신에 열광하게 마련이다.

선거에서 가장 큰 무기는 단순성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행동하고, 단순한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은 선거의 기본이다. 대중의 관심사,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슈를 통해 대중을 동원해야 하며, 반드시 찬반이 분명해야 한다.

선거는 정책이 아니라 이슈의 게임이다. 토론이 아니라 논쟁에서 이겨야 한다. 막무가내라도 좋다. 만약 당신이 전자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라면 사용설명서와 광고전단지 중 무엇을 먼저 읽어보겠는가? 복잡하고 따분한 제품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살펴보는 이는 열에 하나도 없다. 선거에서 정책과 공약은 미안하지만 제품 사용설명서와 같다.

선거는 진리와 진실을 따지는 게임이 아니다. 대중은 자질있는 후보보다 이길 수 있는 후보를 선택한다. 선거는 명백하게 구도의 게임이며, 유권자들은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장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당선가능성이 높은 후보는 최선의 후보이기 보다 차악의 후보다.

선거에 임박해지면 정당들은 고유의 정책이나 이념을 실현하기보다 선거 자체에서의 승리를 목적으로 하는 선거전문가정당(electoral professional party)으로 변모하게 마련이며, 모든 계층의 지지를 추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어떤 계층의 이해와 요구도 반영하지 못하는 무색무취한 포괄정당(catch-all party)으로 변모하기 십상이다.

선거가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정책은 없어지고 이슈만 남게 마련이다. 합리적 이성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느 순간부터 원초적 감성만이 본능적으로 자극되기 시작한다. 논쟁적 토론은 곧장 편가르기식 말싸움으로 대체된다.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이 대선후보를 확정하는 전당대회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본선대결에 들어갔다. “함께하면 더 강하다(Stronger Together)”는 힐러리 클린턴과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도널드 트럼프의 슬로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로 상반되기도 하지만, 그저 남의 일처럼 바라볼 수 만은 없는 관계에 있는 우리로서는 그만큼 우려의 폭이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주한미군을 포함해 “동맹이라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힐러리 클린턴은 “동맹과 함께하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힐러리 클린턴이 “미국의 일자리를 죽이는 한국과의 무역협정을 지지했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도 지지했다”고 비난했고, 힐러리 클린턴은 “일자리를 제공받기 원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경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아메리카니즘(Americanism)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불법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미국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까지 공약했고, ‘강한 미국’을 위해 보호무역과 법질서를 강조하고 나서기도 했다.

안보나 경제 모든 면에서 패권국가를 자임하는 미국이 공공재의 분배나 글로벌리즘을 뒤로하고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겠다는 원초적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것이 자칫 ‘빅 브라더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합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미국의 유권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선거는 이성의 게임이 아니라 선동의 게임이라는 점은 분명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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