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널린 말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그의 길을 만들고,

그의 집을 만들고, 그의 사람을 만들고, 그의 태양도 만든다.  

그의 말은 벽이 되고, 벽 속에 그림이 된다

혀끝으로 돌아나오는 말들은 낙엽이 되어 구르고

하늘의 구름이 되었다

 

그의 말은 귓볼을 스치고 가는 바람이었고,

벽 속에는 회오리로, 컵 속에는 태풍으로 만들어졌다 

흔들린다

말이 흔들린다

발걸음이 흔들린다

쏟아져 나오는 말들이 발걸음에 밟히다가 사라진다.

길이다  

 

장독대 화분 

 

옹기들이 숨을 쉬는 그녀의 장독대 화분

봄이면 시금치 씨앗 뿌려 시금치나물 해먹고,

그 자리에 고춧대 심어 고춧잎나물 무쳐먹고,

고춧대에 고추가 매달려 다시 붉어질 때면

벌레가 숭숭 파먹은 가을배추는 속이 차오른다  

내년에도 담글 수 있을까 올해만 담가야지

봄볕에 정성들여 담근 고추장은 주인의 손을 잃은 지 오래 묵은

간장독을 실로 다닥다닥 꿰맨 바가지가 감싸고 있다  

고추장 퍼서 돌리고 간장 퍼서 돌리고

된장 퍼서 돌리고 소금 퍼서 돌리고

그녀가 오르내리던 장독대에 꽃이 피었다. 

 

잔치 중에도 말의 잔치가 있다. 얼마나 말이 진수성찬이면 잔치 같을까. 말은 인간이 의사표시를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이 의사표시가 요즘에는 단순한 의사표시에 머물지 않는다. 말로 못할 일이 없다. 집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태양도 만든다. 회오리가 되기도 하고 태풍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진실이 아닌 말들은 결국 중심을 잃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말 많은 세상 살면서 가능하다면 건강하고 아름다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빈 집 장독대에도 어김없이 꽃은 핀다. 장독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궤맨 바가지도 그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집 저 집 장을 나누어 먹느라 닳고 깨진 바가지다. 우리네 어머니의 전형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앞으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을 지난 시대의 용서와 희생과 나눔이 묻어 있다. 그 어머니 매번 내년에도 장을 담글 수나 있을까 걱정이셨던 모양이다. 결국 허망하게 떠나시고, 떠나신 후에도 장독대에 꽃은 피어서 마치 그 어머니 다시 오신 듯하다. 

이 작품은 지난 8월 20일 수원 라마다호텔에서 있은 전국계간문예지 수원축제 중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박하리 시인의 작품이다. 박 시인은 2012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지금은 리토피아 편집장으로 좋은 잡지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백인덕 시인은 수상자 선정평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언어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발명이다. 자연이 아니다. 발명이라는 점을 강조하면 우선적으로 소통을 지향해야 한다. 그것이 정보든 정서든 소통이 불가능하다면, 개인의 발명에 그치고 언어로서 제 기능을 상실한다. 자연이라고 믿는다면 경험의 문제로 축소되면서 시를 좁은 울타리 안에 가두고 말 것이다. 박하리 시인은 무엇보다 이 사실을 명료하게 알고 있다.’

박 시인의 소감은 겸손하다. ‘나는 높은 곳도 아니고 낮은 곳도 아닌 그저 그런 곳에 살면서 그저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본다. 처음에는 약간 비틀린 사고를 치유하기 위해 시를 만났다. 잘 쓴 시를 보면 사람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품이라 생각했다. 아직 서툰 나의 시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늘 두렵다.’ 그의 시가 이번 수상으로 한 걸음 발전하면서 머지않아 자기 나름의 시세계를 구축하는 쾌거를 이루기를 바란다./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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