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 배롱나무에게

 

 

자네 그림자는

무량수전 부처님 눈빛으로

남아 있네 그려

허리를 낮추어야만 보이는

들꽃의 얼굴이 되어 있네

대웅전 뒤틀린 기둥이

구부러진 허리를 펴고 앉으면

연못에 빠진 구름처럼

자네는 풍경소리를 처마에

매달고 있네 그려

쓸쓸함이 고요함의 내면에

숨어 있는 날에는

바람까지 붙들고

자네는 연못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네 그려

-계간 리토피아 겨울호에서

 

 

박일 시인은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한국문인협회 인천광역시지회 사무국장, 이사를 역임했으며 송도고에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 《사랑에게》, 《바람의 심장》이 있다.

 

박일 시인은 1985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게다가 30년이 넘는 탄탄한 시력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한국시단은 물론 인천시단의 주목 받는 시인임이 분명하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작금의 난해한 시단의 흐름에도 물들지 않고 자신의 오로지한 세계를 지키며 시작에 매진하고 있다.

그의 시는 서정적인 세계를 고수하며 인간의 내밀한 감성을 감미로운 언어로 퍼올리는 것으로 특장화 되어 있다. 개심사 배롱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시인은 무량수전 부처님 눈빛과 동시에 허리를 낮추면서도 이름이 없는 들꽃을 떠올린다. 연못 속에 고즈넉이 떠있는 구름을 두르고서 고요히 잠겨있는 배롱나무에서는 풍경소리마저 들린다.

그런데 이 고요함의 속성은 다름 아닌 쓸쓸함이었다. 그 쓸쓸함이 바람마저 붙들고 더욱 고요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절간에 들어서 있어도 쓸쓸하다면 부처님의 세계는 배롱나무에게 무엇이었을까. 온갖 일들로 소란한 세상에서 벗어나 부처님 안에 안주해 있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배롱나무에게 묻고 있는 것은 아닐까./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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