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광식 전국공무원노조 전 희생자원상회복 투쟁위원장

▲ 고광식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 희생자원상회복 투쟁위원장 ⓒ 인천뉴스

“내년 6월이 되면 만 60세인 공무원 정년이 끝납니다. 1년 후면 복직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의미죠.(웃음) 퇴직 하루 전이라도 복직하는게 희망입니다. 노조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명예회복도 하고 싶으니까요.(침묵)”

전국공무원노조 활동을 이유로 2002년 12월 30일 인천지역 1호로 해직된 고광식(59) 전국공무원노조 전 희생자원상회복 투쟁위원장이 당시 ‘공직사회 개혁! 부정부패 척결!’을 슬로건을 내걸고 출범했던 ‘전국공무원조동조합(이하 공무원노조)’ 활동을 회고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그는 이어 “남과 북의 이념적 이데올로기가 살아있는 획일화된 제도권 내에서도 정권의 온갖 방해를 무릅쓰고 출범해 성장한 대한민국 공무원노조는 세계사적으로도 가히 기네스북감이다”며 “특히 민중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거나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정책에 동조해야 했던 과거를 지우고 공무원도 자긍심과 사회적 책무를 지닌 노동자임을 자각하게 되면서 현재는 100만 공무원의 대표조직으로 성장한 점은 자랑할 만하다”고 전했다.

최근까지도 국회에서 계류 중인 '공무원노조 해직자 복직 특별법안(이하 특별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여는 등 아직 해직된 채로 남아있는 136명의 복직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 고 전 위원장은 올해 안으로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복직될 가능성이 없는 해직 공무원이다.

왜냐하면 2015년 7월 당시 장석현 남동구청장이 공무집행방해ㆍ퇴거불응ㆍ공동건조물침입ㆍ공동상해 등의 혐의로 검찰 고소한 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 전 위원장은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파면된 136명의 해직공무원들을 복귀시키는 투쟁을 마다하거나 멈추지 않았다.

고 전 위원장이 노조원들 사이에서 ‘단무지(단순하고 무식하게 지른다)’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공무원노동자의 요구가 있는 곳이면 아무리 먼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두려움 없이 투쟁의 중심에 서 왔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를 아는 조합원들은 해직 공무원 복직 외에도 ▲노동조합 관련 활동 해직자 원직복직 특별법 개정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 ▲공직사회 성과 퇴출제 폐기를 촉구하는 등의 투쟁을 통해 공무원노동자의 권익을 신장시키는데 이바지했다는 데 토를 달지 않는다. 그는 그 자체로 인천지역 공무원노조 역사의 산 증인인 것이다.

그는 “나를 아는 노조원들이 어렵고 힘들었던 노조 초창기부터 선봉에서 뚝심있게 싸웠다는 점을 인정해주고 믿어줄 때는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족을 생각할 때면 마음이 많이 착찹하다”며 “특히 나와 같은 해직자 중에는 20년 이상 근속 기준을 채워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 안타깝다”는 말로 속상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어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하게 공무를 수행하면서 침묵하지만, 지지의 눈빛을 보내는 다수의 공무원노동자를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난다”는 말로 끝까지 역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덧붙였다.

한편 고 전 위원장은 공무원노조가 출범하기 전부터 전국공무원직장협의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해 왔다. 이후 공무원노조가 2002년 3월 23일 고려대학교 4.19기념관에서 법외노조로 출범할 당시에는 부평구 공무원노조직장협의회 대표로 활동하며 실질적인 공무원노조 태동을 함께한 주역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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