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중강 경아대 예술감독/ 문화재 위원

“인천 율목동이 고향인 저에게 근방 율목공원에 위치한 경아대는 가무악희(歌·舞·樂·戱)가 존재하는 멋진 놀이터였어요. 새벽녘에도 시조창이나 단소소리 아련하게 들려왔고, 학교가 파하고 율목공원으로 달려가면 멋진 볼거리가 정말 많았거든요. 제가 국악인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어 준 곳이 경아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잠시 침묵) 이후 오랫동안 철망 안에 갇혀 빛을 잃고 있던 경아대가 올해 가을 무렵 다시 문을 엽니다. 경아대가 인천 국악 산실로써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제가 가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을 생각입니다.”

윤중강(61) 경아대 예술감독은 재개관을 앞두고 있는 경아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아대(景雅臺)는 1960년대 초반, 전통예술을 가르치고 배울 제대로 된 공간이 없는 상황에서 1962년 40여 평 규모 한옥 시설물 조성돼 인천 문화예술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으로써, 당시 국악인과 무용인들의 집결지였다.

그러나 현재는 시설물 보호를 위해 주 1회만 율목동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사물놀이, 국악)운영을 위해 개방되고 있어 과거의 문화 공간적 의미는 그 빛이 퇴색했다고 볼 수 있다.

윤 예술감독은 “율목동 옛집에서 살고 계시는 시각장애를 가진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과거의 빛을 잃고 철망 안에 갇혀 있는 경아대를 일부러 찾곤 하는데, 그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심지어 인천 국악인조차 인천 국악의 산실이었던 경아대를 모르는 경우가 있어, 몇 년 전부터 용기를 내서 경아대 재재관 당위성을 주장해 온 것”이라는 말로 경아대 재개관을 위한 각고의 노력 등을 압축해 설명했다.

윤 예술감독에 의하면 경아대가 활성화된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무렵의 율목공원은 그곳을 찾는 어른이나 아이들 모두에게 큰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경아대가 위치한 율목공원 곳곳은 부채춤과 장고춤, 삼고무, 오고무, 열두발상모 연습공간으로도 활용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경아대는 과거 화장터였던 율목공원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다.

또 한국국악협회 인천지회 장소로도 경아대가 활용되면서 인천 국악과 무용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윤중강 경아대 예술감독/ 문화재 위원 *사진촬영 공간은 인천 신포동 버텀라인 무대 ⓒ인천뉴스

윤 예술감독은 특히 경아대의 역사를 설명하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경아대는 이우구락부(以友俱樂部)를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며 “서울에 풍류를 즐기는 사람이 모이는 정악원이 있는 것처럼 인천에서도 그런 공간을 필요로 했는데, 결과적으로 경아대가 생김으로서 인천의 정악(正樂)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사실 인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국악을 직업으로 택해 많은 혜택을 받은 내가 정작 고향 전통예술에는 많이 무심했구나, 싶은 점이 늘 마음에 걸렸었다”며 “최근 10여 년간 인천 국악 역사 등 관련 자료 등을 모으면서 나름 맹렬하게 연구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그렇다. 경아대 재개관을 시작점으로 삼아 앞으로도 꾸준하게 인천 국악 발전에 적극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해 말했다.

인천에 대한 그의 애향심과 경아대 예술감독으로서의 진심어린 포부가 특유의 또렷하면서도 쾌활한 어조 속에 담겨있었다.

한편 서울대 국악과와 일본 도쿄예술대 대학원 음악연구과를 졸업한 윤 예술감독은 대중에게는 국악평론가로 많이 알려진 인물로서, 현재 문화재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또한 창작 및 연출가로서 매우 독창적인 예술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윤 예술감독은 인터뷰를 마치며 “경아대는 한옥이다. 한옥은 사람이 사는 공간으로, 사람이 살수록 오래도록 유지되는 공간이다”며 “경아대가 다시 문을 열고 재정비돼 젊은 국악인들의 온기로 가득 채워진다면, 인천국악은 새롭게 활짝 꽃 피울 것”이라고 덧붙이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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