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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길 작가의 수필 '어물 이야기'
▲ 병어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면서 생선에 대해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던 입장이 머쓱하게 되었다. 그 하나가 봄철 진미인 ‘도다리’생선회와 쑥을 넣은 백숙탕을 주위 분들한테 자신 있게 권하던 모양새에 흠이 가게 된 것이다.

도다리란 놈은 사촌격인 넙치(광어)와 달리 양식이 되지 않아 자연산뿐이라고 믿고 있던 차에 중국산 양식 도다리가 국내 자연산으로 둔갑하여 고가에 팔리고 있는 현장을 고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생각지도 않던 중국의 양식장들이 놀라운 기술개발로 나의 고정관념마저 깨뜨리고 만 것이다.

양식어류는 한정된 공간에서 키우다보니 어병(魚病)이 잦아 많은 양의 항생제를 쓰게 마련이다. 이러다보니 웬만한 소비자들은 어체에 축적되었을 항생물질을 의식하여 자연산을 선호하는 추세다. 아마 요즘 대형마트의 무농약 유기농 코너가 인기 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또 하나는 ‘다금바리’ 생선회의 변신에 관한 것인데 다금바리는 제주도 근해에서 잡히는 농어과의 고급 생선이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은 놀랍게도 다른 어류의 생선살을 화학 처리하여 다금바리의 육질과 식감. 맛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내는 거다. 시식을 하는 실험맨도 혼동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거다. ‘아니 저럴 수가 있나. 그럼 내가 그동안 먹은 것도 혹시? 유명 뷔페에서 그럴 리가 있나.’ 애써 마음을 달래보지만 머리가 혼란스럽다. 속고 속이는 진실게임의 끝은 어디인지. 선량한 소비자만 억울한 노릇이다.

이제는 세상인심이 각박하여 먹을거리마저 의심받는 세상이다. 도대체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생선은 어디 없을까? 서민과 가장 친숙한 고등어마저 머나먼 노르웨이산이고 오징어는 남미, 동태는 알라스카에서 온지 오래되었다. 어려서부터 봐왔고 입맛을 돋우던 친근한 어물들,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어물들이 새삼 그리워지는 까닭이다.

봄이 되면 주꾸미, 꽃게가 구미를 당기고, 뒤이어 병어가 찾아온다. 병어는 등이 푸르고 배가 반짝반짝 은색으로 빛나는 것이 귀티가 난다.

병어는 씨알이 작은 건 ‘세꼬시’나 ‘뼈꼬시’로 쓰고 구이는 큰놈을 쓴다. 병어는 비릿하지 않고 담백하여 고소하고 달콤하다. 서양에서는 높게 쳐서 버터피시(Butter fish)라고 부르고 일본 관서지방에서도 알아준다.

아이 손바닥만 한 것은 ‘자랭이’라 하고 무와 함께 바짝 졸인다. 어른 손바닥만 한 것이 병치(병단)이고, 조금 큰 것이 병어, 이보다 더 큰 것을 덕자(덕재)라고 하는데 50센티미터 넘는 놈도 있다. 아마 버릴 것 하나 없이 알뜰히 먹을 수 있어 덕(德)을 베푸는 생선이란 뜻에서 붙인 이름 같다. 그래서 어부들한테도 대접을 받고 제사상에도 오르는 모양이다.

육질이 단단하고 촘촘하여 회로 먹을 때 식감이 좋고 뱃살도 두툼하다. 병어회 소스는 초장이나 고추냉이(와사비)보다는 된장이 좋은데, 된장에 고추장을 살짝 넣고 다진 마늘과 고추, 참기름, 통깨만 섞으면 된다.

여름에 맛있는 민어(民魚)는 이름처럼 국민 물고기다. 제사상에 올랐고 횟감으로 건어물로 탕용으로 두루 쓰였다. 배를 갈라 건어포를 하면 ‘암치’라고 불렀고 알(卵)은 말려 도시락반찬이나 술안주로 먹었다.

부레는 참기름에 살짝 찍어 먹기도 하는데 ‘젤라틴’이 많아 어린 시절 연싸움할 때 유리가루와 함께 깡통에 끓여 실에 붙이는 ‘깸치’용으로 썼다.

초여름에 맛이 좋으며 노인이나 병후 원기 회복에 좋아 복더위에 보신탕은 삼품, 민어는 일품이라고 할 정도로 알아준다. 을왕리 바다에서 해양훈련을 하며 배불뚝이 민어 몇 마리를 잡아 소금간만 한 채 탕을 끓였어도 모두 맛나게 먹던 기억이 난다. 울음소리를 ‘꽉꽉’내며 이동하는데 부레에 공기가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소리라고 어른들이 말하던 생각이 난다.

농어는 더워지는 계절에 식탁을 빛나게 해주는 날씬하고 잘생긴 물고기다. 율도 앞바다에서 낚시로 잡았는데 거의 팔뚝만 한 힘 좋은 놈이다. 낚싯줄을 쭉 잡아당기며 손마디에 피가 날 정도로 싸우다 펄떡이며 갑판에 올라오면 녹색의 매끈한 피부가 반지르르하게 빛났다.

미끼는 ‘쏙’이라고 하는 가재종류를 좋아하며, 숭어처럼 새끼에서 성어가 되기까지 이름이 달라지는 출세어(出世魚)로서 어려서는 ‘깔때기’라고 부른다.

근자에는 연평도 연안에서 많이 잡혔는데 갓 잡은 놈을 뱃전에서 회를 치면 무지개 빛깔이 선명하고 아이스크림처럼 스르르 녹던 달콤한 맛이 아직도 입안에 맴돈다.

송도 신도시가 조성되기 전 조개가 지천으로 깔려있던 어느 여름, 콜레라가 발생되어 어물의 판로가 끊기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송도 해변을 지나는데 드럼통에 주먹만 한 소라를 쪄내고 있었다. 아마 10여 드럼쯤 되는 것 같던데 어시장에서 경매가 되지 않아 부랴부랴 건제품으로 만들려고 작업 중이었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입맛을 당기는데 마음껏 먹으라며 초고추장과 소주를 내놓는다. 양재기에 소주를 부어 벌컥벌컥 들이켜고 손으로 소라덩이를 초고추장에 찍어 입안에 넣으니 오돌오돌 한 식감은 물론 달콤한 향이 물씬 풍긴다.

당시 콜레라균이 꽃게에 있다는 소문에 살아있는 꽃게가 국내에서는 안 팔리는데 일본으로 수출은 잘됐다. 우리는 안 먹는데 일본사람들은 바보라 사갔을까. 살아있는 해물에는 콜레라균이 서식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심 많은 국내 소비촉진을 위해 부득이 꽃게도 생선회도 공무원들이 앞장서 시식하며 언론에 홍보하던 시절이었다.

가을에는 뭐니뭐니해도 전어다.

옛말에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라고 했고 “며느리 친정 간 새에 먹는다.”고 했다. 지글지글 굽는 냄새는 밴댕이와 함께 탄성을 자아낼만하다.

전어는 가을에 20센티까지 크는데 이때가 지방이 많고 뼈도 부드러워 고소하고 맛이 깊다. 귀천(貴賤)이 모두 좋아 했으며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했단다. ‘세꼬시’로 뼈째 썰거나 구워 먹는 서민적 물고기인데 요즘은 영흥도나 강화도에서 축제식 양식으로 기르고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겨울에 손바닥만 한 참가재미를 깨끗한 햇볕에 꾸덕꾸덕 말려 연탄불에 구워 먹는 맛은 경험 안 해 보면 잘 모른다. 노릇노릇하게 굽거나 밥솥 양재기에 넣어 쪄낸 납작한 가재미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일미라 하겠다.

겨울바다 갯벌 위에서 살이 통통하게 오른 광어 살을 넣고 끓인 미역국과 부드럽고 감미로운 회 맛. 그것은 이맘때 느끼는 맛의 하모니다. 이때 광어회는 나무젓가락을 사용해야 제 맛이 난다. 집기도 편할뿐더러 고유의 맛을 잃지 않도록 간장이나 와사비를 살짝 묻히는 것도 센스다. 특히 모둠회로 먹을 때는 자기 앞쪽부터 집고 담백한 흰 살부터 먹는 것이 순서다. 초고추장에 범벅하거나 상추에 풋고추, 마늘, 된장으로 싸서 먹는 것은 고유의 맛을 반감시키는 요인이다. 진한 맛을 좋아하는 우리네 식성 탓도 있지만 아무래도 광어회 참맛은 그윽하고 은은하게 맨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제격이다. 인절미만큼 크게 썰어 한입 넣는 맛. 그것도 한겨울에 어울리는 또 하나의 향연이라 하겠다.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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