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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푸른 돌밭' 출판 기념모임경북 청송 산골에 귀농한 여성 농부

노동과 침묵의 시학

시인의 독한 마음과 높고 따뜻한 마음이 함께 담긴 시편들

7일 오후 4시 출판기념 모임

최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인은 도시 생활을 접고 2013년부터 경북 청송의 작은 골짜기에서 혼자 농사를 짓고 있다. 밭 한귀퉁이에 여섯 평짜리 농막을 지어 놓고, 일천여 평의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는 시인.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 씨감자 심고 덮어 준 흙이 / 가늘게 떨린다 // 흙을 밀어 올리느라 / 애쓰기를 // 사나흘 // 흙 틈으로 / 누르스름한 얼굴 / 가까스로 내밀고 하는 말 // 간신히 살아간다 // 무거운 말씀 / 감히 받아 적었다 // 따가운 볕 아래 / 감자 싹은 한나절 만에 푸르뎅뎅해진다 // 진초록 잎으로 부풀어 오른다 (「감자 싹」 전문)

인간의 노동이 자연의 노동 앞에 겸허해지는 최고의 순간”(최원식)을 “감히 받아 적”은 시집 『푸른 돌밭』에는 고된 노동 속에서 삶과 시를 함께 일구어온 시인의 독한 마음과 높고 따뜻한 마음이 함께 드러난다. 

감자밭의 독사를 “내장이 터지고 머리가 납작해지도록 / 내리치고 또 내리”치던 시인은 “손톱만큼 자란 양배추 싹을 쏙 뽑아 먹”는 새끼 고라니를 너그러이 눈감아 준다. 감자 싹이 간신히 흙을 밀어 올리며 들려주는 “무거운 말씀”을 “감히 받아 적”는 시인은 자신의 마음밭도 아름답게 일구기 위해 애를 쓴다.

“청송 작은 골짝 끝자락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고백하는 최정 시인은 “작은 골짝의 품에 안겨 받은 위로”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농사일을 하며 몸이 느끼는 대로 생활하는 단순한 삶의 일부”가 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시들의 주인은 흙과 풀들”이라고 털어놓는다.

노태맹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노동하고, 기도하고, 밤늦게 시를 쓰는 수도자의 모습을 그이의 시에서 나는 보았다. 나는 그것을 시 앞에서의 침묵, 시를 위한 침묵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때 침묵이란 단순한 말없음, 묵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로서의 침묵이고, 노동과 행동을 전제로 한 침묵”이라고 소개한다. 최정 시인은 노동하는 수도자처럼 노동이라는 침묵의 사유를 통해 자연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말을 시로 기록함으로써 대부분의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에서 사회에 도달하고자 한다.

최정 작가는 1973년 충북 충주에서 태어나 인하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첫 시집 『내 피는 불순하다』(2008)로 문단에 나왔다.

20년간의 인천 생활을 정리하고, 2년 동안 강원도 홍천 유기농 농가에 머물며 농사를 배웠다. 2013년 경북 청송으로 귀농하여 홀로 밭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귀농 후, 두 번째 시집 『산골 연가』(2015)를 펴냈다. 현재 골짜기 끝자락에서 1천여 평의 밭농사를 지으며 1인 여성 농부로 살고 있다.

추천의 글

최원식 (문학평론가)

충주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공부하고 청송으로 귀농한 1인 여성 농부 최정의 삶은 신기하다. 그런데 그의 시는 신기하지 않다. 물론 “단풍이 발자국을 찍으며/성큼성큼/한 걸음씩 내려오는//가을,”(「때 늦은 낫질」)처럼 산골에서 농사짓는 사람만이 알아챌 멋진 구절이 없지 않지만, 이 대목이 오히려 이 작품의 골자와 겉도는 점에 유의컨대, 최정 시의 본령은 이런 데 있지 않을 것이다. 가령 씨감자 덮어 준 흙이 가늘게 떨리면서 조금씩 갈라지기를 사나흘 만에 누르스름한 어린 얼굴을 가까스로 내미는 과정을 접사(接寫)한 「감자 싹」에서 시인은 말한다.

 

무거운 말씀

감히 받아 적었다

 

이 고귀한 순간에 모든 담론이 부질없다. 인간의 노동이 자연의 노동 앞에 겸허해지는 최고의 순간을 ‘받아 적는’, 그것도 ‘감히 받아 적는’ 것이 그의 경건한 시작업일 터다.

작은 골짜기에서 홀로 밭농사를 짓는 그의 농업노동은 이처럼 원초적이다. 시집 『푸른 돌밭』은 그 받아 적기다. 돌밭을 가는 고된 노동이 그대로 마음을 경작하는 앨쓴 길이 되는 드문 경지가 시집 안에서도 진화하매, 감자밭에 침입한 독사를 처단하는 첫시 「뱀」은 좀 독하다. 그 아처로움은 “손톱만큼 자란 양배추 싹을 쏙 뽑아 먹”은 새끼 고라니의 허기를 관용하는 「가을에 먹을 양배추」에 이르러 높고 따듯하게 풀어지거니와, 마음밭의 아름다움은 「공무도하가」에서 절정에 달한다. 임종을 앞둔 ‘엄마’와 ‘나’의 대화를 희곡적으로 구성한 이 담시는 화해가 시로 되는 드문 과정을 베낀 점에서 독보적이다. “혁명이 사라진 시대”에 홀로 청송 골짜기로 입산하여 “속절없이 봄은 또 오는데” “때론 패배를 심”(「고로쇠나무에게」)는 또 다른 혁명을 실험하는 최정은 정녕 시인 이후의 시인일진저.

 

양순열 기자  press@incheo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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