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는 구체적 사실을, 시기는 연월일을 명시해야

▲ 박현진 노무사/노무법인 사람&사람 대표
패션의류 제조·판매회사에 근무 중이던 근로자 A는 2013년 10월 즈음에 대표이사로부터 “출근은 이번 주까지 하고, 업무 인수인계는 다음 주까지 마무리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 사실상의 해고통보에 대해 근로자 A는 ‘해고사유와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근로기준법 제27조에 따르면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사용자는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하여야 하는데, 이 같은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해고는 무효가 된다.

서울중앙지법은 “(회사측이 근로자 A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해고사유가 기재돼 있지 않고, 달리 서면으로 이를 통지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전제하고 “이런 절차상 하자가 있는 해고에 대해서는 사유의 적법성에 대해 살펴볼 필요 없이 무효”라고 판시했다.
절차적 요건이 결여되었으니, 해고의 실체적 요건인 해고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하여는 심리조차 않겠다는 것이다.

절차요건 결여시, 해고사유 살펴볼 필요 없이 무효

근로기준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에겐 중앙지법의 이 같은 결론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을 거론하는 이유는 노동위원회 또는 법원에 계류된 해고사건에서 해고처분의 서면통지의 존재 여부가 의외로 자주 다투어지기 때문이다.

근기법 제27조 서면통지 요건 입법취지는 사용자가 해고 여부를 보다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해고사유를 통지받은 근로자로 하여금 해고의 존부 및 해고사유 등 해고를 둘러싼 분쟁 사항을 명확하게 알게 하여 근로자의 방어권을 보장함으로써 종국적으로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여기서 ‘서면’이란 해고의 의사표시와 그 사유, 시기가 기재된 ‘종이로 된 문서’를 의미한다. 따라서 휴대폰 문자, 이메일, 회사 홈페이지 등을 이용하여 해고를 통지한 것은 원칙적으로 서면통지로 볼 수 없다.

‘서면’이란 해고의 의사표시, 사유, 시기가 기재된 ‘종이로 된 문서’

그러나 근로자의 해외연수 기간 동안 회사와 이메일로 교신해 왔고, 회사가 해고사유가 담긴 인사위원회 의결통보서를 첨부해 이메일로 해고사실을 발송했으며, 근로자가 이를 수신하여 확인했던 사건에서 법원이 이메일을 이용한 해고의 서면통지 효력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서울중앙지법 2009.9.11. 선고, 2008가합42). 이와 같이 근로자가 원거리에 있는 등의 사정으로 이메일을 통하여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등 장소적·기술적으로 이메일 외의 의사연락 수단이 마땅하지 않거나, 회사가 전자결재체계를 완비하여 전자문서로 모든 업무의 기안·결재·시행 과정을 관리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전자문서를 이용한 해고의 서면통지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

서면통지시 ‘해고사유’에는 어떤 내용을 적시해야 하는가? 업무상 횡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징계해고 하면서 근로자를 배려하기 위해 ‘회사경영상의 악화’를 해고사유로 기재하여 통지한 사건에서 법원이 서면통지 위반으로 판단한 사례가 있다(서울행법 2010.6.3. 선고, 2009구합52844). 해고사유에는 해고를 하게 된 진실한 동기 또는 원인을 기재해야 한다. 따라서 해고처분을 하면서 실질적인 해고사유를 숨기고, 거짓 사유를 적시한 경우 서면통지 위반으로 해고처분의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

해고사유, 진실한 동기 또는 원인을 기재해야

서면에 해고사유를 적시하는 경우 어느 정도까지 명시해야 하는가? ◯◯대학교 어학교육원 강사인 근로자에게 특정한 해고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강의개설 종료 알림’이라는 제목의 공문으로 ‘11월 강좌개설 시부터는 강의를 할 수 없다’는 내용의 통보를 한 사건에서 법원은 서면통지 위반으로 해고의 효력을 부정했다(서울행법 2012.2.23. 선고 2012구합24361). 서면통지 의무가 근로자의 방어권 보장하기 위한 취지라는 점에서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입장이다.(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해야

‘해고사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정도’까지 명시하는 것이 서면통지 효력요건이라면, 이를 충족하지 못한 서면통지는 일률적으로 효력이 부정되는가? 이에 대해 법원은 징계절차 진행 과정에서 근로자가 해고사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방어권을 온전하게 행사할 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달리 판단한다.

해고사유의 근거규정만을 기재하였을 뿐 구체적인 비위행위를 적시하지 아니하여 서면통지 효력 여부가 문제됐던 ◯◯의료원 사건에서 법원은 서면통지의 효력을 인정했다. 법원은 “이 사건 징계해고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징계사유의 내용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일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이 사건 각 징계사유를 확인하면서 별다른 이의 없이 인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소명기회를 가진 사실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이 사건에서 원고 의료원이 참가인에게 그 해고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하지 아니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서울행법 2012.10.18. 선고, 2012구합3996). 해고사유 명시정도가 ‘구체적인가’를 심리함에 있어 ‘서면명시’라는 형식이 아닌 ‘당사자의 인식’이란 실질에 근거해 판단했다.

해고사유 명시 정도의 구체성 판단기준, 형식 아닌 실질적 판단

법원은 징계절차 과정에서 근로자의 방어권 행사에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징계사유를 추상적으로 기재한 경우(서울행법 2012.6.29. 선고, 2012구합6933) 심지어 기재하지 않은 경우(서울행법 2012.2.16. 선고, 2011구합2491)에도 해고사유 명시 의무를 완화하고 있다.

서면통지시 해고사유와 함께 해고시기를 기재해야 하는데, ‘해고시기’란 해고효력 발생일이다. “‘해고시기’는 해고의 효력을 발생시키고자 하는 시기를 말하며, 적어도 연월일을 기재하여야 하나, 해고처분 이후에 서면통지를 한 경우는 해고의 효력이 인정될 수 없고, 해고사유만 명시하고 해고시기를 명시하지 않은 경우에도 해고의 효력이 인정될 수 없다(서울고법 2012.7.13. 선고, 2011누33275).”

해고시기 명시 정도, 적어도 연월일을 기재해야

해고처분을 서면으로 통지한 경우 ‘서면통지에 기재된 시기’와 ‘서면통지가 근로자에게 도달한 시기’가 다른 경우 해고의 효력발생일이 전자 또는 후자인지 문제가 될 수 있다. 해고는 상대방 있는 단독행위이므로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의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에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원칙이다.(민법 제111조) 민법상 도달주의 원칙에 따르면 해고의 효력발생일은 ‘서면통지가 근로자에게 도달한 시기’이어야 맞다.

그러나 해고의 효력발생일에 대한 법원의 주류적인 입장은 민법상 도달주의 원칙과는 다소 다른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특히 ‘서면통지에 기재된 시기’를 도과하여 근로자에게 해고의 서면통지가 도달된 사건에서 대다수 판례는 ‘서면통지가 근로자에게 도달한 시기’가 아닌 ‘서면통지에 기재된 시기’(서울행법 2009.9.3. 선고, 2009구합13078) 또는 ‘서면통지를 작성하여 발송한 시기’(서울행법 2012.6.28. 선고, 2011구합23313)를 효력발생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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