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려면·2

 

사람과 사람 사이를 돌면서

유심히 살필 일이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옷자락을 흔들어 보고

머리카락을 살짝 스쳐 지나가 보고

귓바퀴를 살살 간질이면서도

내가 지나갔는지를 모르게 할 일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도

왜 갑자기 상쾌해 웃었는지 모르게 할 일이다.

닫았던 옷깃을 열어젖히며

왜 갑자기 시원한 느낌이 들었는지 모르게 할 일이다.

-계간 리토피아 42호에서

 

정승열 시인

 

197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새가 날개를 퍼덕여도 숲은 공간을 주지 않았다’, ‘단풍’, ‘단풍2집’. 인천문인협회 회장.

잘은 몰라도 중용이란 양자에게 모두 무관심하거나 방관하는 자세는 아닐 것이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양자를 모두 용서하고 아우르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편 가르기가 이미 습성화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중도란 회색분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반성에 반성을 거듭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번 대선은 이 회색분자라 따돌림 받던 사람들이 무서운 기세로 칼을 뽑은 셈이 되었다. 편 가르기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결론도 동시에 가르쳐 주었다.

왜 우리는 어느 한 편에 반드시 서야 하는가. 어느 한 편에도 서지 않으면 왜 대접 받지 못하는가.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에도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가르쳤던 것인가. 혁명적 사고방식이란 무뎌진 과거를 창조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교체하자는 말이기를 바란다. 전 국민의 몫인 행복은 반드시 누군가의, 또는 어느 한 편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찾아지지 않는다. 미래란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이고, 행복의 정체 또한 누구도 알 수 없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들에게 우리는 회색분자라는 별로 존경스럽지는 않은 투의 별칭을 붙여주었다. 결국에는 어느 쪽이든 선택해야만 사람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협박성이 농후한 비아냥이 섞인 별칭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있어 세상이 충돌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들이야말로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완충지대의 제3자들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들은 말없이 지켜보는 최대한의 인내심으로 보수나 진보 양자의 책임을 냉엄하게 묻고 있을 수도 있으니 그 역할도 그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인천 향토에서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고 지역 시단을 이끌어가는 인물이 정승열 시인이다. 언뜻 보면 평생 교단에서 살아왔고, 게다가 교장으로 정년퇴임한 인물이라서 자칫 보수적인 인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인이 진보에 등 돌리는 일은 보지 못했다. 현직이 보수계열인 한국문인협회 인천지회의 회장이라 하더라도 그의 정신은 보수에 머물지만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인천 지역사회의 시단을 평생 지켜왔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그의 말년이 흐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몫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몫을 반드시 챙겨놓아야만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물이다. 자신의 몫이 있더라도 굳이 챙기지 않는 것이 그의 인품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부드럽고 편안한 바람이 되길 원한다. 혹여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프고 매서운 바람이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쓴다. 아픈 자들에게는 위로가 되기를 원한다. 추운 자들에게는 따뜻한 존재이기를 원한다. 절망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원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면서 어떤 실수도 너그럽게 용서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의 눈에 냉혹한 현실이 결여되어 있을 수도 있다. 아파하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시각이 외적 표정에만 머무르고 내면의 보다 절실한 문제에는 접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 불편한 점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일개 시인이 해결할 수 있는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이 그에게 작용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세상이 오더라도 아픈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아픔이 사라지면 또 다른 아픔이 생겨나고, 이 추운 겨울이 가고 나면 다음 겨울이 다시 찾아온다. 영원한 천국도 영원한 봄도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천국을 지향하며 살 뿐이고, 언제든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사는 존재인 것이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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