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검도

 

논둑길에 천 년의 눈꽃이 피었다. 한겨울 꽁꽁 얼었던 얼음장이 깨어지고 뒤엉켜 바다로 흘러든다. 밀고 밀리며 떠내려 온 얼음이 섬 둘레를 가득 메운다. 어디에서 흘러온 얼음인지 알 수가 없다. 겨울의 전장은 섬을 건너 건너 또 건너에서 벌어졌을 것이다. 바다가 온통 폐허다. 외줄에 묶여 있는 여객선은 얼음 위에 마냥 앉아 있다. 육지로 향하는 발들이 선착장에 묶여 있는 동안에도 얼음은 끊임없이 섬으로 밀려든다. 선창가의 보따리들이 얼음 밑으로 가라앉는다. 얼음이 힘 빠진 여객선을 바다로 밀어낸다. 얼음이 잠 자는 섬을 먼 바다로 끌고 간다. 바다는 포효하고 얼음덩어리들은 춤을 추어도 섬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겨울을 지키려는 바람이 아직도 바다를 휩쓴다. 발길 돌리는 논둑길에 천 년의 눈꽃이 피어있다.

 

박예송

 

2010년 리토피아 신인상. 리토피아 편집장. 막비 동인.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

 

 

강화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간 후에 다시 하리 선착장에서 배를 갈아타고 2킬로 거리 30여분을 가다보면 20여 호의 주민들이 분지 같은 섬 안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서검도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50여 호였던 주민들이 세월이 지나며 그 사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하는데, 중국인이 우리나라로 들어서기 전 감시 통제하던 곳이라서 서검도라 부른다고 한다.

섬에 사는 사람들은 섬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평생 갇혀 사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제일 큰 섬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하는데 하물며 작고 외진 서검도 사람들이야 두 말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자유롭게 열린 바다를 통해 육지로 이동할 수 있어 겨우 숨을 쉬는 형편이다가 바다가 온통 유빙천지가 되어버려 오도가도 못하게 된다면, 그 애타는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서검도가 고향인 시인의 눈에 서검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다. 서검도는 때 묻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세계인 동시에, 꼼작 못하고 갇혀 발을 동동 구르게 만드는 유빙의 공포스러움이 공존하는 세계다. 서검도 사람들은 발이 있어도 배가 있어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 아닌 절망을 느끼며 살아간다. 세상이 온통 현대화의 물결에 휩쓸려도, 제아무리 대한민국이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해가도, 서검도는 아직도 변함없이 옛날의 갇혀있는 서검도로 남아있다. 그러나 문명의 혜택에서 그 나눔이 오지게도 더딘 곳이 어디 서검도 뿐이랴./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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