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선포산*에는

 

가지 끝을 비집고 나온

진달래꽃 봄 먹는 소리가

귀 속으로 들어앉는 오후

그 위로 눈 부릅뜬 송전탑들은 서로 줄다리기를 한다.

 

겨울을 헤치고 나와 잠시 쉬는 생강나무들이

좁쌀 같은 꽃을 매달고

온 산에 생강냄새를 퍼붓는다.

 

산 아래서는 봄쑥들이 숙덕숙덕 키를 재고

등으로 떨어지는

작은 한나절은 저녁 준비로 분분하다.

 

젊은 날은 멀리 있어서

종종걸음으로 올라오니

길은 좁고 마음만 바쁘다

오르막길엔 숨소리 거칠고

 

누군가 두고 간 신문 위로 바람 홀로 뒤척거리는 봄날

커피 한 잔에 취해 지난봄을 추억하는 시간

소나무에 매달린 죽은 시계 속에 오늘도 사람들 눈이 들락거리다 간다.

 

*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산.

-리토피아 봄호에서

 

문영수

 

2008년 ≪애지≫로 등단.

 

선포산은 천마산 또는 철마산이라 불린다. 옛날에 이 산에서 용마가 났다하여 철마산이라고도 부른다. 서구와 부평구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거지역과 인접하여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산보하듯 들르는 산이다. 말하자면 시민들이 내 집 뜰처럼 거니는 작은 산인 셈이다. 틈이 날 때마다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니 산을 오르면서 생각도 여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봄이 오는 산에 오르면서 삶의 찌든 때를 벗겨내고,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봄산이니 온갖 새로운 풀과 나무들이 그리고 벌레들과 새들이 반겨줄 것이다.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다. 그런데 만발한 진달래꽃 위로 송전탑이 지나간다. 진달래꽃은 봄 먹는 소리를 내고 있지만, 송전탑은 눈을 부릅뜬 채다. 누군가 걸어놓은 죽은 시계도 꽤나 상징적이며 인상적이다. 초침이 멎은 시계를 둘러싸고 자연은 변함없이 그 생명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있다. 인간이 만든 시간과 자연이 만든 시간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시간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릎을 꿇는 존재이지만, 자연은 넉넉한 여유로 시간마저도 스스로 만들어간다.

자연과 교감하며 내 몸을 읽어낼 수 있다면 나 자신 역시 자연임을 쉽게 이해할 수도 있겠다. 몸을 자연 속으로 던지는 이유야 많겠으나 자꾸 벗어나는 몸의 자연 상태를 회복하자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법하다. 물질과 과학이 가져다주는 놀라운 세계와 편리함이 과연 자연의 신비스러운 세계와 생명성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까. 過不如不及이라 했다. 지나친 것은 부족한 것보다 못한 것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곧 바로 허물이 된다. 미치지 못함을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미치지 못함이 오히려 본질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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