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 신문들 성난 5·18 의제

▲ <전남일보> 17일자 6면 기획특집.ⓒ 전남일보

5·18 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광주전남 민심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보수신문사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계열 종편방송들이 80년 5월의 광주를 조명하면서 뜬금없는 '북한군 투입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보수성향의 한 인터넷 사이트에선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들이 난무하는 등 역사왜곡이 상식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TV조선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해 게릴라전을 벌이며 광주시민을 선동했다는 '북한 개입설'을, 채널A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남파된 북한군이 있었다는 등 실체가 불분명한 내용을 각각 방송으로 내보내 슬픔에 가득 찬 광주전남을 두 번 울리고 있다.

도 넘은 5·18 폄하, 누가 희생자들 두 번 울리는가?

특히 TV조선은  "600명 규모의 북한군 1개 대대가 침투했고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라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라고 주장한 임천용 자유북한군인연합 대표의 말을 여과 없이 방송했다. 또 채널A는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1980년 5월 21일 배를 타고 광주 인근 바닷가에 도착해 시민군 행세를 했으며 작전을 마치고 후퇴할 때는 남한 특전사를 공격했다는 내용을 사실처럼 보도했다.

이와 때를 맞춰 보수성향 인터넷 사이트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게시판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5·18 민 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5월 희생자를 '홍어'로 비유했다. 심지어 관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사진에 '경매에 들어선 홍어'라는 제목을 달아 공분을 사고 있다.

게다가 국가보훈처는 5ㆍ18 민주화운동 33주면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해 달라는 광주시민사회의 요구를 공식 거부함으로써 지역 민심을 더욱 자극하는 형국이 됐다. '해도 너무 한다'는 볼멘소리가 광주의 5월,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과 역사왜곡에 대해 지역 정치권과 5월단체, 광주전남 시민사회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5․18 33주년을 맞아 광주전남지역 언론들도 일제히 박근혜 정부와 보수언론 및 보수성향 인터넷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5․18 33주년 특집기사들마다 슬프고,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들이 가득하다. 

"5·18희생자, 이직도 '원혼' 말끔히 달래지 못했는데..."

▲ <광주일보> 17일자 1면.ⓒ 광주일보

<광주일보>는 17일 1·2· 3면에 이어 사설면에서까지 분을 삭이지 못했다. 신문은 '도 넘은 5·18 폄하, 정부는 대체 뭘하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5·18 민주화운동이 33주년을 맞지만 5·18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며 서운한 점들을 부각시켰다.

사설은 "아직 공식 사망자 수가 확인되지 않고, 발포 명령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등 희생자의 원혼조차 말끔히 달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더욱 안타까운 것은 5·18에 대한 폄하와 비방이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점"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사설은 5·18 당시 희생된 시민의 시신과 계엄군에 붙잡혀 포박된 시민들을 비하한 인터넷사이트 '일간베스트'와 80년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탈북자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한 종편채널을 비판했다.

"정부가 5·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 국가기념일로 행사를 치른 지 오래이고, 5·18에 참여해 희생과 부상당한 시민들을 국가유공자로 대우하고 있는 마당에 이런 반민주적 작태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라고 비통해한 사설은 "정부가 나서 이들에 대한 엄한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사설은 특히 "종편채널들은 사과는 물론 재발방지를 천명해야 한다"며 "죽음과 피로써 이 땅에 민주화의 초석을 이루어낸 5월 영령들이 지켜보고 있다"고 엄중히 꾸짖었다.

전쟁보다 참혹했던 80년 5월 광주, 그 주범들은 지금 어디에

▲ <광주일보> 17일자 2면 기획특집.ⓒ 광주일보

신문은 또 이날 '신군부 총칼 앞에서도 광주시민은 용감했다'는 1면 머리기사와 2면에선 '국가기록원정보공개 국방부 사진자료로 본 5․18' 특집을 내보냈다. 특집에서 신문은 '전쟁보다 참혹한 80년 5월 광주'를 날짜와 시간대별로 생생하게 전했다. 또  3면 특집기사 제목으로는 '임을 위한 행진곡 온 국민이 제창...이제 박대통령이 결단해야'를 뽑아 눈길을 끌었다.

특집기사 자료는 <광주일보>가 국가기록원에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해 제공받은 것으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05∼2007년)가 5·18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수집한 것"이라고 신문은 밝혔다. 자료들은 5·18 관련 시민 및 계엄군 사진으로 채워졌으며 ▲ 시위현장 및 진압 사진(458장) ▲ 아시아자동차 공업주식회사 피해사항 및 피해차량 사진(425장) ▲ 계엄군 치안유지·사후 수습 사진(265장) ▲ 시위 현장 및 진압 사진(180장) 등 모두 1328장이다. 자료들은 당시 신군부가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민주화 투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왜곡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목놓아 부르는 이유

▲ <전남일보> 17일자 1면. ⓒ전남일보
 

<전남일보>도 17일자 지면을 1면에서부터 사설에 이르기까지 온통  5ㆍ18 특집기사로 채웠다. 특히 신문은 이날 사설 '아직도 제자리 찾지 못한 광주항쟁'에서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사설은 "최근 한 종편은 북한 특수부대원 출신을 출연시켜 '5·18은 북한 특수부대가 개입한 무장 폭동'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공공연하게 방송했다"며 "5·18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행동이 계속된다면 정권에 대한 신뢰는 갈수록 추락하고 국민화합도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5·18이 한 세대가 훌쩍 지나 어느덧 33년이 흘렀으나 여전히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인 사설은 "최근 국가보훈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기념식 공식 식순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혀 5·18 단체 등과 충돌을 빚고 있다"고 꼬집었다. 사설은 "우리가 5·18 정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욱 진전시키고 평화통일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무겁게 주문했다.

이 신문은 이날 1면 '보훈처 '임을 위한 행진' 끝내 막았다'란 제목의 기사에서도 국가보훈처가 제33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공식 식순에 포함하라는 광주의 요구를 공식 거부한 데 대한 서운함을 시민들과 각 단체들의 성난 목소리로 대신 전했다. 

신문은 1면 톱 제목을 '5·18 항쟁 33주년'으로 뽑는 등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면에 가득 담았다. "우린 어쩌면 지금 너를 잊었나보다"란 기사는 "다시 노래 부른다"며 가사를 한 구절 한 구절씩 적어 내려가 시선을 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박근혜 정부, 수수방관하지 말고 강력한 조치 취해야"

▲ <광주매일> 17일자 1면. ⓒ광주매일
이날 <무등일보>도 사설 '광주 문제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에서 "광주는 여전히 답답하고 무겁기만 하다"고 전했다. "5·18은 민주와 인권, 평화의 횃불을 높이 치겨 들며 죽음과 피로써 이 땅에 민주화의 초석을 이뤄낸, 그리하여 우리 현대사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항쟁이었지만 지금까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라고 사설은 풀이했다.

"아직까지 공식 사망자 수도 확인되지 않았고, 발포 명령자 또한 베일에 가려져 있는 현실이 5·18에 대한 작금의 처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는 사설은 "더욱 안타까운 것은 5·18에 대한 폄훼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는 점"이라며 보수언론과 보수세력의 한심한 역사폄훼와 왜곡을 비판했다.

<전남매일>은 이날 '5·18 33주년, 여전히 뜨거운 광주'란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내보냈다. 기사는 "광주·전남진보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식 제창 공식화와 공식 기념곡 지정, 박승춘 보훈처장 사퇴 등을 촉구했다"며 "이 같은 행태는 5·18 역사 왜곡과 폄하를 정부 차원에서 합법적으로 자행하겠다는 것으로 국민들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처럼 5․18 민주화운동 33주년을 맞아 광주전남 민심이 심상치 않다. 지역 언론들뿐만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과 정치권은 "보수정부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일부 보수 언론들이 공개적으로 5·18광주정신을 훼손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해 영령들의 명예를 짓밟는 망언과 망동을 자행하는데 대해 분노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광주항쟁이 독재와 폭력에 맞서 일어난 시민들의 자발적 민주혁명이었음은 국가와 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자들의 뜻을 훼손하려는 망동에 분노한다"며 "정부가 이 같은 행위에 대해 수수방관하지 말고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한 5월단체의 성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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