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간 가깝게 지내던 모임의 한 분이 밴드를 통해 번개팅을 날렸다. 며칠간 내린 비로 동네텃밭에 심은 상추와 쑥갓이 먹음직스럽게 자랐으니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잔다. 이런 유혹을 거절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만수4동 주공아파트 410동 앞 거머리산 자락에 비스듬히 조성된 텃밭, 1991년 내가 남동구에 처음 이사온 때부터 있었던 텃밭이니 가히 남동구 텃밭의 원조라 할 만하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졌다고는 하나 돈보다는 삶의 질을 우선시하게 되면서 귀농이나 텃밭 가꾸기는 도시인의 로망이 되었다. 자치구마다 도시농부, 상자텃밭 등의 사업을 활발히 펼치면서 여기저기 자투리땅마다 푸성귀가 한창이다. 이런 텃밭은 자연스레 이웃을 모이게 만들고 마음을 나누게 만든다.

 번개팅 문자를 보고 날 듯이 달려온 우리 4부부 8명도 텃밭 윗자락에 정성껏 만든 작은 원두막에 끼어 앉았다.

 너무 좁아서 무릎을 세우고 옆 사람과 어깨동무를 해야 했으나 우리는 마치 어렸을 때 어른들 몰래 동무들과 다락방에 숨어 놀던 기분이 되어 신나 했다.

술잔이 몇 순배 돌고 흥이 무르익자 O가 자신의 얘기를 꺼냈다. O는 모임 때마다 우스갯소리로 분위기를 돋우던 나와 동갑네기로 유쾌한 사나이였다.

O는 동생의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형제들이 모두 집을 날리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단다. 겨우 회복되려는 즈음에 교통사고에 휘말려 징역을 살았다고 한다.

길 한복판에 누워있는 사람을 발견하고 급정거했으나 역부족이었다고. 즉시 경찰에 신고하고 보니 자신은 겨우 발등을 밟고 지나갔을 뿐 사망에 이르게 할 만큼의 사고는 아니었단다.

그러나 그는 과실치사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직장도 잃었다. 간신히 가족을 찾아 합의를 보고 출소했으나 그 후로 그는 한동안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고통 받았다.

O는 이제 말할 수 있다며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중이라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다시 직장도 얻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적은 월급이지만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밝게 웃었다(울다 웃으면 똥구멍에 털 난데요~~~)

유쾌함 뒤에 그런 고통을 감추고 있었다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모두 자신들의 삶의 고단함을 떠올리며 공감의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우리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는 O도, 듣고 있는 우리들도 위로받고 있었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