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수시장 뒤편 골목길을 지나다 소낙비를 만났다. 급히 몸을 피하고 보니 허름한 미장원 처마 밑이었다.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창안을 들여다 보니 3평 남짓 좁은 공간에 할머니들이 빼곡히 앉아 계셨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할머니들의 눈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순간 나는 민망하여 두리번거리며 앉을 자리를 찾았으나 빈 자리는 없었다.

“뭐 하시게요?”
퍼머를 열심히 말고 있던 내 또래로 보이는 원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그 미장원에 어울리는 손님이 아니었다. 너무 젊었던 것이다. 그 공간의 평균 나이가 70은 되는 것 같았다.
“아, 아니요, 그냥, 비가 와서…”
“여기 앉으시구랴”
할머니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손님이 많으시네요”
엉거주춤 엉덩이 반쯤만 자리에 붙이면서 나는 어색함을 메꾸려고 덕담으로 말을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분 저분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 미장원은 그 자리에서만 30년이 넘었단다. 이 할머니들은 30년 세월을 함께 한 단골들이었다. 원장은 이 단골 할머니들 때문에 미장원을 이전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득히 앉아 있는 할머니들 중 머리를 하러 오신 분은 몇 안되고 대부분 그냥 마실 오신 분이었다. 아침에 와서 종일 앉아 있다가 저녁 해가 져서야 돌아가시는 분도 계신단다. 보조도 없이 원장 혼자서 하기 때문에 머리감는 일은 손님 스스로 하거나 서로 감겨주기도 한단다. 수건 개키기, 바닥 쓸기 등 잡일도 거든다. 경로당 가는 것보다 이 미장원에 오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하신다. 무엇보다 퍼머비가 옛날 그대로라고 자랑하신다.

퍼머를 마친 원장은 부시럭 부시럭 김치찌개를 데우고 전기밥통에서 밥을 푼다. 마침 할머니 한분이 들어서며 “아직 점심 전이지? 짱아찌 좀 무쳐 왔는디. 맛있을랑가 모르겄네.” 하신다.
할머니들은 유치원생처럼 얌전히 앉아서 밥 한 그릇씩 받아들고 맛있게 점심을 드신다. 옹색한 자리인데 표정은 남부럽지 않은 부자다. 손님도 아닌 내가 같이 먹기 미안해서 일어서니 할머니들이 내 손을 잡는다.
“샥시도 같이 먹어. 우린 다 이렇게 먹어.”
이 미장원에서는 누구든지 점심 저녁을 이렇게 함께 먹는다고 한다. 원장은 돈을 떠나서 어른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산다고 활짝 웃는다.

맛있게 점심을 얻어먹고 미장원을 나서니 비는 개이고 공기는 가볍고 마음은 잔잔한 행복으로 출렁인다.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