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거울

장독대 간장독 뚜껑을 열어보니 간장은 보이지 않고
한 단지 가득 하늘이 들어 있습니다

엷은 구름 한 장, 헤진 모시적삼처럼 수막에 떠있습니다

간장 속, 그 속
메주가 푹 삭아 거울이 된 것이겠지요

포대기 냄새가 나는 것이겠지요

깊이를 알 수 없는 당신의 그림자, 눈을 닮았습니다

잎맥만 간신히 남은 이파리 하나 바람에 흘러갑니다

-계간 리토피아 여름호에서
 

이명

경북 안동 출생. 2011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분천동 본가입납', '앵무새 학당'. 2013년 숲속의 시인상 수상.

 

곰삭은 간장독에 하늘이 뜨고 있다. 하늘은 강물에도 뜨고 냇물에도 뜬다. 그런데 간장독에 뜨는 하늘은 좀 특별하다. 거기에는 콩밭을 일구던 농부의 착한 땀냄새와 메주를 쑤는 지순한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소금밭을 일구던 사람들의 애환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것이 서정이다. 서정에 리얼리티가 없다는 말은 모르는 소리이다. 그 서정 속에는 깊고 무거운 리얼리티가 마치 간장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곰삭아 있는 것이다.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소금물과 비교할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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