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과 나비 

 

열세 살 소녀 가장이

일흔 살 할미를 위로하고 있었다.

식은 팥죽 한 그릇을 두고

등신대의 울음 덩어리가 서로 엉겨

간간이 들썩이며 빛나고 있었다.

 

굴신도 못하는 시든 할미꽃 위에

지친 나비가 날개를 접고 얕은 잠에 잠겨 있었다.

합죽이가 된 입을 오물거리며

그래도 이슥한 생을 건너온 마른 꽃잎이

잠든 손녀의 귓불을 가만히 빚어주고 있었다.

-장이지 시집 <라플란드 우체국>에서

 

장이지

전남 고흥 출생. 200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안국동울음상점>, <연곷의 입술>, <라플란드 우체국>. 평론집 <환대의 공간>.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시작과 끝은 생명체의 숙명이다. 어찌할 수 없는 절대상황이다. 세상에 마음먹어서 올 수가 없었듯이 마음먹은 대로 갈 수도 없다. 생명체에게 주어진 것은 생과 사, 그 사이에 주어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아주 짧은, 한 번의 시간뿐이다. 생명체의 모든 일은 이 사이에 벌어지게 되어 있지만, 그도 마음먹은 대로 되기는 쉽지가 않다.

아주 작은 꽃씨가 땅에 뿌려져 싹이 트고 꽃을 피운 후에 다시 시들어 소멸할 때까지, 그 안타까운 시간 속에서 그는 단 한 번의 꽃을 피운다. 절정이다. 그런데 이 절정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안타까우랴. 절정의 순간이 최대로 절제되고, 아니면 억지로 제어되거나 무시된다면 그 사이에 숨어 있는 사연들은 차마 들을 수도 없으리라.

시작과 끝이 만나 화해하면서 중간 토막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없는 것은 아니다. 가운데를 안쪽으로 밀어넣고 난 후에 시작과 끝을 겸손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열세 살 소녀 가장이 일흔 살 할머니와 살고 있다. 이유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모두가 넉넉히 알만 한 일이니까. 소녀와 할머니의 하루가 환하다. 생성과 소멸의 따뜻한 이해가 사실은 중간 토막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이다.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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