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나는 징이다. 바람이 와서 툭 툭 칠 때마다 펄 펄 끓던 불가마가 생각난다. 온 몸이 쇳물로 녹여지며, 벌겋게 달아오르는 고열과 옹고집이 쇠망치로 펑 펑 매질을 당했다. 산다는 건, 바데기에 한 뜸 한 뜸 불 담금질을 견디는 거였다. 내안의 울음 깨기였다. 더는 견딜 수 없었던 어느 날,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옹이로 박힌 울음주머니가 부종처럼 부어올라 징 징 징 쇠 울음소리를 내었다. 가슴이 돋움질치며 유장한 소리와 소리의 파장이 일었다. 사투리와 사투리로 뒤섞이는 사람들 틈에서 자주 모가 났던 내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큰 울림통이 되었다니. 산다는 건 불가마속이어도 견디고 볼 일이다. 쓰레기 산에서도 꽃은 피고, 절망의 그늘에도 온기로 다가오는 햇살. 오늘, 녹청 꽃 피어도 좋은 내 몸에게 고마워. 고맙다고 말했다.

-계간 아라문학 제2호에서

 

정미소

 

2011년 ≪문학과창작≫으로 등단. 막비시동인.

 

 

감상

네 탓, 내 탓, 탓을 하자면야 자신이든, 남이든, 누구에게라도 허물을 물을 수는 있다. 탓이라도 해야만 잘못되어진 일에 대한 상처가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나 잘못된 방향으로 결론이 나버린 일은 탓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는다. 본래 세상일이란 제대로 마무리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결론이 나오기도 어렵다. 그러니까 아무리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했다 하더라도 일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마음먹은 대로는 어떤 일도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의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의 결과보다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을 더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징은 신명을 돋우는데 쓰이는 도구이다. 때리는 사람 자신도 신명이 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신명을 돋우는 데 그만큼 좋은 것도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자신을 징으로 만든다는 것은 때리면 때릴수록 신명이 나는 자신의 몸에 대한 역설적인 관리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몸을 통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신명 나는 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희생적 배려도 담겨 있다. 자신을 징처럼 때려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마치 그 동안 몸속에 쌓인 온갖 응어리를 일시에 뱉어내는 듯한 강력한 배설의 효과마저 가지고 있어 보인다. 자신의 몸을 징으로 만들어 무한 에너지를 뽑아내는 현명한 방법을 시인은 찾아낸 것이다. /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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