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지

타인의 지번으로 팔과 다리를 묶인 자루형 토지이다. 메아리가 염장된 통조림통을 끌어안고 있는 포대자루이다. 불안만 발효시키고, 있는 무명자루이다. 어둠으로 꾹꾹 밟아 놓은 길이 없는 자루 위에 부드러운 햇살 한 점 물고 온 바람이 실없이 끈 자락을 흔들고 있다. 뽀얀 뺨을 부비며 서성거리는 두려움이 자루 속을 채우면 잘잘하게 접힌 웃음들이 텅 빈 허공을 두드리는 닳아빠진 자루이다. 꿰맨 자리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자루의 곳곳을 타고 기억들이 흘러내린다. 돌돌 말린 슬픔이 별처럼 반짝이는 풀리지 않는 자루이다. 현재가치가 없는 자루이다. 미래가치가 없는 자루이다. 혹시, 한 귀퉁이 터진다면 빌딩 하나 세워질 자루이다.

-천선자 시집 <도시의 원숭이>에서

천선자

2005년 방송통신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2010년 계간 ≪리토피아≫로 등단했다. 막비시동인으로 활동 중.

 

감상

어쩌면 우리의 세계는 모두가 맹지였고, 오늘도 얼마든지 맹지일 수 있다. 사방이 남의 땅으로 둘러싸여 몸을 움직이기도 버거운 답답한, 이 공간 속에서 우리는 하나 같이 꼼지락거리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 하늘은 온전한 하늘이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우리에게 저 하늘이 정말 온전한 하늘이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도 저 하늘은 우리들의 하늘이고 저 하늘이 정말 하늘의 제대로된 모습이라고 믿고 사는 것이 고작이다.

우물 안 개구리의 하늘이 우리들의 하늘과 무엇이 다르랴. 오십보 백보다. 그러므로 맹지인 줄 모르고 살아도 그만이고, 맹지인 줄 안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는 없는 것이다. 어차피 우리들의 세계는 누군가의 손바닥 안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껍질 안에 갇혀 살아도 우리는 끊임없는 생명의지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 그것도 그냥 자연이며 자연의 개체마다 안고 있는 한계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생명활동이다. 껍데기이든, 우물 안이든, 맹지이든, 터지거나 벗어나는 일은 언제든 올 것이다. 그 날이 오면 또 다른 세계를 향해 날개는 힘차게 퍼덕일지도 모른다. /장종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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